[역경의 열매] 장성만 (9) “기술·신앙 겸비한 인재 양성하자” 결심

[역경의 열매] 장성만 (9) “기술·신앙 겸비한 인재 양성하자” 결심 기사의 사진

약혼자가 곧 미국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비자 문제가 깔끔하게 처리된 것이다. 사고무친한 미국 땅에서 인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여간 큰 기쁨과 위로가 아니었다. 미국에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늘 서운했었다. 나는 약혼자의 비자가 속히 나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여의도비행장에서 손을 흔들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더했다. 그런데 내가 미국에 온 지 한달 반 만에 그녀가 도착한 것이다. 그 반가움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신시내티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아내는 기독교교육을 공부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아내가 기독교 교육을 선택한 것은 좀 의외였다.

"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려 하는가."

"당신은 조국에 돌아가 기독교 대학을 설립할 꿈을 갖고 있잖은가. 당신이 원대한 꿈을 펼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좋은 내조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공부라고 생각해다오."

얼마나 감사한가. 그 지혜와 배려가 가슴에 절절히 전해져왔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미국은 기능사회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우받는다. 아이비엠(IBM)에서 컴퓨터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간당 4달러45센트를 받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사람에겐 시간당 1달러40센트가 주어졌다. 아무 기술도 없는 사람은 노동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았다. 심지어 공동묘지 잔디를 깎는 사람도 자동차가 두 대였다. 잔디를 깎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었다. 당시 한국 국민 1인당 GNP가 87달러였다.

"아, 바로 저것이다. 조국에 돌아가면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리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리라."

인생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놓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기도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졌다. 수많은 학생 틈에서 강의하는 내 모습도 그려졌다. 나는 그것을 기도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기도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

나는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여러 교회로부터 초청이 이어졌다. 미국의 저 수많은 교회가 내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찌 알고 나를 초청했을까.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곳은 서울이나 부산이 아니다. 미국의 중심 도시다. 저들이 나를 알아볼 리가 없는데…. 집회 초청을 한 교회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를 어떻게 알게 됐나."

"맥시 선교사가 편지를 보내왔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미국에 올 것이라고…. 당신을 잘 도와주라는 당부가 있었다."

고마운 맥시 선교사. 부모형제도 이렇게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였다. 당시 미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정말 뜨겁고 순수했다. 집회를 마치고 나오면 연세 좀 드신 교인들이 나를 기다렸다가 악수를 하면서 내 손에 달러 몇 장을 꼬옥 건네기도 했다. 그들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힘내라. 이 돈을 좋은 곳에 사용해라."

보람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었다. 한국에 기독교 대학을 설립해 기술과 신앙을 가진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는 비전을 밝히고 기도를 당부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정확하고 치밀했다. 나는 공부와 설교를 병행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유학해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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