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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진홍] 희귀·난치병


2007년 미국 방송을 통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난치병(CIPA)에 걸린 로베르토 살라자르(5)의 애절한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다. CIPA는 차갑거나 뜨거운 것, 뼈가 부서지거나 살이 찢기는 아픔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다. 펄펄 끓는 물에 화상을 입어도, 음식을 먹다가 혀를 깨물어 피가 나도 반응이 없다. 살라자르도 수차례 다쳤지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는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 언제, 어떤 상처를 입어 생명이 위태롭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살라자르의 부모를 비롯해 CIPA 환자를 둔 가족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고통 없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고통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산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를 겁니다." 일생을 고통 없이 살아가기 바라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너무 절실한 얘기다.

발병 원인은 불명확한 상태다. 고통을 느끼는 신경섬유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이다. 왜 병이 생겼는지 모르니 치료 방법 또한 여의치 않다. CIPA 환자가 몇 명인지 미국에서조차 정확한 통계가 없다. 이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희귀·난치병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등록된 것만 5000여종이라고 한다. 아직 병명조차 모르는 것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11종에 2만4000여명의 희귀·난치성 질환자가 있다. 관련 민간단체들은 질환자 수를 50여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가족들 사정도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 희귀한 약품과 장비가 필요한 탓에 엄청난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 집을 날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가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진료비 본인 부담률을 현행 20%에서 10%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7월 입법예고한다고 이달 초 밝혔다. 뒤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을 기대한다.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이 많아지고, 그들을 보는 시선도 더욱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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