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이상돈] 침묵의 봄을 막으려면 기사의 사진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생명을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의 봄//'

T. S. 엘리어트가 지은 시 '황무지'의 앞부분이다. 4월은 진정 잔인한 달인가. 황무지 같은 세상을 이어가야 하는 생물들이 소생하고 생존 경쟁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새로운 생명들을 보며, 엘리어트는 꽃 피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한 것 같다.

레이철 칼슨이 쓴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이라는 책 역시 침묵하는 봄을 잔인하다고 보았다. 봄은 소란하고 역동적이어야 하지만 4월이 되어도 꽃 피우는 소리로 소란하지 않고 번식하는 새들로 지저귀지 않으면 잔인한 봄이 된다. 엘리어트의 잔인한 4월은 이들이 이어가야 할 생명의 어려움, 버거움을 잔인하다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와 풀, 침묵하는 새는 4월을 더 잔인하게 한다.

생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은 더 이상 생물들만의 계절이 아니다. 날씨 변화가 우리 환경에 다양한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이 봄에 활동하는 것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생물계절학(Phenology)이 새로운 연구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대기온도 상승이 식물계절과 동물계절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특성에 따라 관찰하는 식물 및 동물 자료는 기후변화에 대한 생물반응을 예측하여 변화하는 지구기온에 따른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식물계절 관측 수종은 벚꽃, 매화, 개나리, 진달래뿐 아니라 아카시아, 복숭아, 배나무, 코스모스,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 우리와 친근한 10개 식물종이 망라되어 있다. 동물계절 관측 종엔 봄의 전령 제비·종달새·뻐꾸기, 계절 변화에 민감한 뱀과 개구리뿐 아니라 곤충으로 배추흰나비, 밀잠자리, 참매미 등 8종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생물의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상승하는 지구온도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선 지구온난화란 말이 언급되기 훨씬 이전에 지역적 온도변화를 나타내는 생물종에 대한 개화시기, 동물종의 활동 시기에 대한 관찰을 수행하여 왔다. 74개 기상청 지소에서 19개 생물종에 대한 생물계절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서울관측소의 경우 1923년부터 기록된 자료가 있다.

'여의도 봄꽃축제'가 절정을 지나고 있다. 여의도에는 서울의 벚꽃이 개화하는 시기를 기록하기 위한 벚꽃표준목이 국회의사당 남측문 앞에 다른 벚나무들과 함께 봄의 소란함을 알려주고 있다. 앞으로 서울의 기후변화에 산 증인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이런 자료는 매우 희귀한 기록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만 가진 자료다. 하지만 지난 85년간 이어온 관찰기록 작업이 예산 및 인력부족으로 사라져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본 자료를 통해 생물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후변화에 대응책을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를 꾸준히 기록하고 관찰한 기상관측소의 일선 요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지난날 오롯이 간직되어 온 생물기록 관찰이 지금의 기후변화에 대한 해답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봄이 침묵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여야 한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방대한 관찰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이상돈 이화여대 교수 환경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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