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성만 (10) 결혼 예물은 1달러 짜리 시계 반지하 아파트에 신방

[역경의 열매] 장성만 (10) 결혼 예물은 1달러 짜리 시계 반지하 아파트에 신방 기사의 사진

1963년 성탄절은 축복의 절기였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DC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운용·박동숙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김운용씨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태권도의 세계화에 기여한 국제적 인물이다. 당시 그는 주미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박동숙씨는 아내의 바로 윗 언니다.

처가는 1남5녀인데,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장녀 동춘씨는 교사이고, 둘째 동근씨는 한신대 이장식 교수의 아내다. 3녀 동숙씨는 김운용씨, 4녀 동순은 나와 결혼했다. 5녀 동혜씨는 언론인 장주석씨의 아내다. 장남 동화씨는 창원대 총장을 지냈다. 장모님의 기도 덕분에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부모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워싱턴DC에서 한인감리교회 황재경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유명 한인들은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외무장관을 지낸 공로명씨는 당시 2등 서기관이었다. 이국에서 갖는 결혼식이라 더욱 감동이 컸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부부가 된 것이다. 아내에게 준 결혼 예물은 1달러짜리 시계 하나였다.

"하나님, 좋은 배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계속 기도를 드렸다. 결혼식을 마친 후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신시내티로 돌아왔다. 우리에겐 살 집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온종일 눈길을 걸어다니며 집을 구했다. 하이힐을 신은 신부의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신부의 발등을 계속 문질러주었다. 어렵게 구한 반지하 아파트. 아주 낡은 공간이지만 우리에겐 천국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무는 곳이 곧 천국임을 그때 알았다.

결혼은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아내가 곁에 있으니 참으로 든든했다. 두 사람 모두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먼저 온 사람이 식사를 준비했다. 아내의 역할, 남편의 역할이 따로 없었다. 나는 미국 여러 교회를 다니며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한국에 기술대학을 설립할 것이다.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여러분의 기도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은 곳곳에 믿음의 동역자를 예비해 놓으셨다.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크고 비밀스런 것을 준비하신 것이다. 사업가인 웰렌 밀러는 내게 결정적인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장 목사, 너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재단을 만들어라. 그러면 우리가 모금을 해서 너를 돕겠다. 아주 좋은 멤버들을 소개하겠다."

즉시 재단이 구성됐다. 윌리엄 홀 목사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대학원 동기인 쉬퍼드 목사 부부, GM의 중역인 로버트 레슬리 부부와 밀러씨가 이사로 참여했다. 독신 여성 우체국장인 알리스 레이버거는 재정 담당을 자처하고 나섰다. 실로 황금멤버였다.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니어폴리스라는 곳에 이사를 왔다. 교회는 우리가 기거할 집을 제공해 주었다.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장남 제국이를 낳았다. 우드 카운티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백인 아이들 틈에 까만 머리카락의 동양 아이가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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