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세종市와 ‘충청도 핫바지’ 장사 기사의 사진

정치판의 '충청도 핫바지'는 김윤환 당시 민주자유당 의원(작고)이 1995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말에서 나왔다. 김 전 의원은 김종필씨가 자민련 창당에 나섰을 즈음 그를 빗대어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대수롭잖게 반응했다. 그걸 갖고 대전의 어느 신문이 "충청도 사람을 핫바지라고 했다"고 왜곡보도했다. 자민련은 "충청도가 핫바지란다"는 식으로 충청도민의 화를 잔뜩 돋우었다.

계산은 적중해 그해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권을 휩쓸었다. 그 핫바지론의 위력은 이듬해 15대 총선까지 이어져 자민련 의석이 50석이나 됐다. 근 반세기 동안 내로라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그런 하치(下値) 지략 따위를 밑천삼아 억지에 가까운 집념으로 오래 권세를 누렸다. 그들은 '망국적 지역주의 청산'을 외쳐대면서 지능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해 거기에 절대적으로 의지했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둘러싸고 충청권 정치인들과 수도권의 일부 정치인이 민망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세종시 건설 명분이라고 할 국토균형 발전과 수도권과밀 해소 실현가능성을 보는 눈이 판이해서다. 반대자들은 세종시의 행정 효율성과 경제적 파급효과 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계획대로면 세종시는 2030년 인구 50만의 첨단도시로 탄생한다. 청와대, 국회, 대법원과 몇몇 장관부서만 제외하고 중앙의 대다수 정부기관이 거기로 이전한다.

세종시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충청지역 득표카드로 쓴 신행정수도 공약이 2003년 위헌판결 후 변형된 것이다. 냉정히 말해 신행정수도 공약은 준비 없이 급조된 정치 사생아다. 비판자들은 세종시를 충청권의 인프라 특성과 접목해 교육·과학기술도시로 만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논리로 강행했다가 낭패본 지방공항과 대형 국토개발 등을 열거한다. 세종시 경우에서도 대재앙, 망국론, 수도 분할은 천도보다도 나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충청도 민심은 끓는다. 주민들은 신행정수도든 행복도시든 그런 걸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도 항변한다. 그런데 정작 그 문제에 이성적 담론으로 접근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은 정치인들이다. 충청권의 일부 정치인은 세종시에 대한 이의를 일절 배척하면서 주민 정서를 풀무질한다. 이건 저급한 포퓰리즘이다. 바른 정치인이면 지역을 초월해 먼저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것이 순서다.

세종특별자치시 특별법 처리가 4월 국회로 연기된 얼마 후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충청도 핫바지론에 불을 지핀 것은 더 경악할 일이다. 그는 "세종시 건설계획을 축소 또는 폐기하려는 시도가 15대 총선 때의 충청도 핫바지론을 연상케 한다. 한나라당의 사기극을 막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도 "YS, DJ, 노무현에게 속고 이명박에게까지 속아 다시 곁불 쬐는 핫바지가 되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의 충청도 핫바지론 재탕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노무현 후보가 신행정수도 공약을 했을 때 이회창 후보는 입장이 없었다. 찬성하기도 뭣하고, 반대하자니 표가 걱정됐으리라는 짐작은 간다.

2002년 대선의 노무현, 이회창 후보 표차는 전국 57만. 그 중 25만이 충청표였다.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 후 "신행정수도로 재미 좀 봤다"고 말했었다. 이회창씨가 진작에 눈 질끈 감고 신행정수도 공약을 베껴서라도 내놨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신행정수도와 세종시는 사실 그게 그거다. 이제 와서 그가 세종시 문제로 '충청도 핫바지'를 팔 낯이 있는지 모르겠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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