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鳥獸哀鳴海嶽嚬)/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1910년 한일병탄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침탈되자 그해 9월10일(음력 8월7일) 통분해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남긴 7언절구 절명시(絶命詩) 4수 중 제3수다.

그의 절명시는 이미 순명(殉名)에 대한 결심이 서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제1수와, 망국에 대한 슬픔을 나타낸 제2수로 비장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드디어 지식인으로서의 통분과 절망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제3수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충(忠)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한탄을 표현한 제4수로 막을 내리는데, 압권으로 제3수가 회자된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찬양할 수는 없지만 나라를 지키지 못한 선비가 자책의 방법으로 택한 그의 자결은 사대부가 직분을 다하지 못한 당시의 세태에 꽂힌 날카로운 비수였다. 아니 지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오늘의 세태에서도 그의 한탄은 유효하다.

전남 광양 출신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이건창(李建昌) 김택영(金澤榮) 등과 한말 삼재(三才)로 불렸을 정도로 명민했던 매천. 하지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나라가 혼란을 겪고 부정부패가 극심하자 구례 월곡마을로 낙향하여 독서와 시문 짓기 등에 열중했다. 초야에 묻힌 그는 문장가로, 사가로 매천집 매천시집 오하기문 봉비기략 등 수다한 저작을 남겼다. 그 중 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 8월22일 합병조약체결까지 47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써내려간 매천야록(6권7책)은 스러져가는 대한제국의 멸망 과정을 냉소적이면서도 처절하게 증언한다.

광양시가 매천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천 문학상'을 제정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선생의 순국 100주년인 내년부터 매년 음력 8월7일 시와 평론 부문을 시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학상도 의미가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매천 선생의 나라사랑을 기리는 '매천 애국상'을 제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