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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권양숙 여사,권양숙씨


황희 정승의 일화다. 그가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지켜보다가 "노인 어른, 저 두 마리 소 중 누가 일을 더 잘합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대답했다. "아무 빛깔이 낫고, 아무 빛깔이 못하오."

아무려면 소가 말을 알아들을까마는 그래도 둘 중 못난 놈이 서운해할지 몰라 그렇게 말했단다. 이 말이 새롭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남을 배려하는 데 인색하다는 증거다. 예절언어가 몸에 배어 있다면 하찮은 동물이라도 굳이 면전에서 험담할 필요는 없겠다. 이 일화의 유머 버전이 있다. "노인 어른…" 하고 같은 말을 물었더니 노인이 귀에 대고 말하더란다. "여보게, 나 노인 아니거든."

노인을 노인이라고 하면 듣는 노인 서운해할 수 있다. '어르신' 정도면 될 것 같다. 어르신은 '나보다 어른'이라는 뜻의 호칭 표현인데 요즘은 '노인'이란 지칭어로 변해 간다. 더불어 가치중립어인 '노인'이 '어르신'을 낮춰 부르는 표현으로 변질된 느낌도 든다.

말은 시대가 변하면서 뜻이 달라진다. '간호부'는 끝말 '부'가 비하적 의미로 변질되다 보니 '간호원'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간호사'로 변했다. 탈북자는 새터민으로 바뀌었는데, 이 말 역시 차별성이 있다고 하여 요즘은 사용에 혼선을 빚는다. 동남아계 혼혈인은 한때 코시안으로 불리다가 다문화가정으로 또 바뀌었다. 대중의 언어를 이처럼 쉽게 바꾸어도 되나 싶지만 취지가 긍정적이다 보니 뒤따르는 문제점을 꼬집기 뭣하다.

사람의 호칭에도 배려하는 표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씨'이다. '아무개씨'는 '아무개'의 존칭으로 쓰인다. 여성의 경우 그보다 높은 표현이 '여사'이다. 신문에서는 대통령 부인 등 특별한 사람에게만 '여사'를 쓴다. 어느 신문은 이 '여사'가 권위적인 표현이라고 해서 노무현 정부 시절 꼬박꼬박 '권양숙씨'라고 썼다가 '노빠'들에게 무던히도 시달렸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권양숙 여사'가 부담없이 쓰인다. 한데 요즘 '권양숙씨'라는 표현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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