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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순만] 숲의 서사시

[삶의 향기―임순만] 숲의 서사시 기사의 사진

숲은 광활한 원시림으로 펼쳐 있어서 나라의 어느 누구도 그 넓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용사들은 60㎏이 넘는(3달란트) 도끼를 둘러메고 숲으로 들어갔다. 용사들은 햇빛조차 들지 않는 빽빽한 숲의 성스러움에 취해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들은 이내 벌목 작업에 들어갔고, 호화로운 궁전과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산림의 벌채는 토양 염화 작용을 일으켜 곡물 수확 감소를 가져왔다. 기원전 2700년경 길가메시의 수메르 문명은 산림 벌채로 시작됐으나 벌채에 의해 내리막길을 달렸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곡물 생산량에 좌우됐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1900년경, 크레타는 에게해의 작은 섬에 불과했지만 대규모 원시림을 가지고 있었다. 수메르 문명이 멸망한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무기 제조, 건축, 연료의 핵심이 되는 그 풍부한 목재에 이끌려 크레타를 찾아왔다. 그 결과 엄청난 부가 유입됐고, 크레타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변모했다.

기원전 500년경 마케도니아 역시 헬레니즘의 변방이었지만 풍부한 숲을 가지고 있었다. 자원이 부족한 그리스는 연료와 건축자재를 마케도니아로부터 수입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로부터 유입되는 부를 정치와 군사력 증강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 정복의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역작 '숲의 서사시(A Forest Journey)'를 출간한 원생(原生)지대 탐험가 존 펄린의 분석이다.

기원전 300년경 초기 로마 국부의 원천도 원시림에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전함 건조용으로 최고인 전나무가 울창한 로마의 삼림을 주목했다. 아테네인들의 시칠리아 원정이 패배로 끝나자 풍부한 산림자원을 지니고 있던 로마로 힘의 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로마 이후 이슬람이 지중해를 지배한 바탕에는 인근에 뛰어난 삼림지대를 갖고 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튀니스의 함대 조선소가 꼽힌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해상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베네치아가 제4차 십자군 원정 당시 유럽 최대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라틴 제국을 세우게 된 배경에도 베네치아의 광활한 숲을 들고 있다.

영국이 17세기부터 집중적으로 북아메리카를 개척하기 시작했던 근본적 이유는 신세계의 처녀림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두드러진 특징은 해안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짙고 넓어지는, 거의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삼림이었다. 신생 미국의 반세기에 걸친 눈부신 경제 발전은 철강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숯, 해운과 제조업, 건설업의 바탕이 되는 풍부한 목재에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렇듯 삼림은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최우선적인 자원의 보고다.

잘 사는 나라는 그 부에 비례하는 숲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자원뿐 아니라 생태학 측면까지 덧붙이면 숲의 효용가치는 무한이다.

오늘날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유 역시 삼림경영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남북 기독교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북한 나무심기 사업이 올해는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의 건축학자 콜럼 코츠는 미국산 삼나무의 수명이 약 2000년에 이르기 때문에 그만큼 오래 가꿔야 효용가치가 높아지지만 지금은 대부분 100년이 안 돼 베어져나간다고 조사한 바 있다. 숲은 그만큼 장기간 투자해야 할 대상이다. 긴 안목에서 숲을 가꾸는 일에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 숲이 쇠하면 민족도 쇠한다.

임순만 종교국장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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