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정태] 정부의 철학 부재인가 기사의 사진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생사(生死)가 결정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크라이슬러는 이달 말, 제너럴모터스(GM)는 다음달 말이 시한이다. 이 기간 안에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와의 제휴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하고, GM은 강도 높은 추가 자구계획안을 새로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야 할 길이 뻔하다. 파산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미 최대 자동차 업체 GM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하다. 미 재무부가 6월1일까지 파산보호 신청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의 외신 보도가 며칠 전 나왔다. 파산 신청 직후 독립 법인을 만들어 우량 자산을 인수하고 불량 자산은 기존 법인에 남겨 청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GM은 이를 피하기 위해 추가 공장 폐쇄 및 감원 계획 발표를 준비 중이지만.

크라이슬러도 회생이 쉽지 않다. 피아트와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임금 삭감 등의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피아트측은 미국 내 일본차 생산 시설의 인건비 수준으로 임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조가 대폭 삭감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두 업체가 몰락에서 벗어나려면 고강도의 구조조정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다가 혼쭐이 빠진 경영진이나 퇴직자 건강보험 기금 등 복리후생에 과도하게 집착해 온 전미자동차노조(UAW), 그리고 출자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채권단 등이 과거 행태나 자신의 입장을 고집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오죽하면 그간 자동차 산업이 미국 경제의 주춧돌이라고 강조해 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달 말 두 업체의 자구안이 미흡하다며 추가 자금 지원을 거부하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겠는가. 여기에는 노사의 뼈를 깎는 고통분담과 구조조정이 없는 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연명시키진 않겠다는 당국의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미 행정부와 의회의 일관된 메시지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최근 노후차량 교체시 세금 감면 등 자동차 산업 지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부 부처간 엇박자나 갈지자 행보는 코미디와 다름없다. 차 업계 지원 방안 마련(3월26일·제13차 비상경제대책회의)→"노사가 특단 자구책 마련해야"(같은 날·이명박 대통령)→조건 없는 지원책 공식 발표(4월12일·지식경제부)→노사관계 진전 없으면 지원 조기 종료(13일·기획재정부)→국회 제출 관련 법안 조기 종료 내용 미포함(17일) 등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런 난맥상도 없다.

특정 업종에 대한 특혜 논란도 있다. 대다수 산업이 어려운 상황인데 지난해 고환율에 따라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은 자동차 업종이 왜 지원 대상으로 선택됐느냐 하는 지적이다. 이 업종의 대표격인 현대·기아자동차도 지난해 내수 부진 등을 겪었지만 이를 고환율 효과로 상쇄시켰다. 그렇다면 자동차 업계 지원이 절박한 시점은 아니라는 얘기다(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쌍용차는 논외로 하고).

게다가 현대차 노조는 오히려 기본급 대비 4.9% 임금인상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처럼 자구 노력도 보이지 않는 곳에 정부가 먼저 몸이 달아 덜컥 세제 지원부터 하겠다고 나서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 정부의 철학 부재를 탓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게 어디 이 분야 정책뿐이랴.

박정태 국제부장 jtpar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