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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문일] 흔들리는 충무공


학자들은 통설이나 통념을 뒤집고 새 학설을 세우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근래 한국사 분야에서 망국 군주 고종이 실은 개명한 군주였지만 외세 때문에 좌절했다는 학설이 나왔다. 나라를 망친 여우로 폄하되던 민비가 요즘 뮤지컬, 드라마의 영향으로 당시의 통념과 달리 나라를 지키려던 비운의 황후로 격상되었으니 고종이라고 해서 계속 찬밥 신세로 남으란 법이 없다. 그러나 고종이 개명군주로 대중적 지지를 받기에는 삶에 극적 요소가 부족하다.

역사 연구에 비전문가들이 끼어들면 막장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재평가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달아난 선조가 연전연승하는 이순신을 얼마나 질시했는지는 선조실록에 죄다 기록돼 있다. 백성은 못난 왕의 편견이나 동서남북 당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웅을 숭모했다.

현대에 들어서서 박정희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가 존경한 이순신을 깎아내리는 풍조가 나타났다. 엉뚱하게도 국문학 교수와 재야 사학자가 선조의 비방을 근거로 이순신을 폄하하고 원균을 높였다. 소설가 김탁환은 한술 더 떠 이순신과 원균의 성격과 경력까지 기록과 다르게 왜곡했다. 몇년 전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역시 왜곡의 극치였는데 '국책(國策)드라마'였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2005년 1월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라고 한 말은 당시 분위기를 대변한다. 그는 박정희 친필 광화문 현판 교체를 발표한 후 현충사에 있는 다른 친필 현판은 떼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연루된 1974년 민청학련의 저항의식에서 성장이 멈춘 사람이 문화재 해설자를 넘어 문화재 행정가가 된 희비극은 지난해 국보1호 숭례문 화재로 막을 내린 셈이다.

최근 현충사 고택 부지가 경매에 나왔고, 서울시는 전문가들 반대를 무시하고 광화문광장의 이순신장군상 뒤에 세종대왕상을 세우기로 했다. 이래저래 장군의 입지가 불편해진 가운데 탄신일(28일)을 앞둔 어제 친필 한시 7편이 공개됐다. 보수단심시호전(保守丹心是好田), 진실한 마음을 지키는 게 좋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충무공의 붉은 마음을 왜곡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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