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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진홍] 아이티공화국


22일자 대다수 조간신문에 미국 마이애미 헤럴드지 사진기자 패트릭 패럴이 퓰리처상 '브레이킹 뉴스' 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중미 카리브해 북부 아이티공화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실렸다. 지난해 9월 허리케인으로 목숨을 잃은 여자 어린이(5) 시신을 주민들이 트럭에 싣는 장면, 영양실조로 죽어가다 2주간의 치료 끝에 가까스로 몸무게가 7㎏으로 늘어난 여자 어린이(4) 모습 등이다. 이 사진들은 인구 800여만명 중 80% 정도가 하루 2달러 이하 소득으로 연명하는 아이티의 암울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티는 흑인노예혁명을 통해 최초로 독립을 쟁취한 위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유럽 제국이 경쟁적으로 서인도 제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17세기 이곳은 프랑스 령(領)이었다. 프랑스는 설탕과 커피를 팔아 막대한 부(富)를 챙겼다. 그 이면에는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된 노예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발발 소식이 대서양을 건너 이곳 노예들에게 전해지면서 독립투쟁은 시작됐다. '검은 자코뱅'으로 불린 투생 루베르튀르는 뛰어난 전략으로 프랑스군 영국군 스페인군을 잇달아 격파했다. 그 결과 1804년 1월1일 독립국가로 탄생했다. 자연자원이 풍부해 한때는 카리브 해안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꼽혔다.

아이티가 빈국(貧國)으로 전락한 데에는 몇가지 내·외적 요인이 있다. 내적으로는 독재와 쿠데타, 내란이 반복됐다. 뒤발리에 부자(父子)는 가장 악질적인 독재자였다. 이들은 1957년부터 1986년까지 29년간 집권하면서 반(反)정부 인사를 포함해 수만명을 학살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아들이 민중 봉기를 피해 프랑스로 달아나면서 챙겨간 돈이 5억달러라고 한다.

외부적으로는 열강들이 '흑인공화국' 아이티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 점이다. 동시에 경제력으로 아이티를 좌지우지하려 온갖 음모를 꾸몄다. 미국은 두 차례나 아이티를 점령했다. 이 때문에 아이티는 더 망가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아이티를 방문, 국제사회 지원을 촉구했다. 아이티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미국은 물론 여타 국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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