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정식] 뇌물에 관하여 기사의 사진

요즈음 뇌물수수와 관련하여 성숙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우려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뇌물이란 직권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보아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금품이므로 이러한 것을 주고받는 관행이 생기면 성숙한 사회와는 그만큼 거리가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특권을 지닌 계급이 생겨나면서 뇌물수수라는 관행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행복이나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편법을 쓰게 되는 것이다.

법질서 무너뜨리는 원동력

흔히 뇌물이라고 하면 고위 공직자 등 지도층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러한 직책에 있을수록 영향력을 많이 행사할 수 있고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역시 유혹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물로는 흔히 금품이 사용되지만 반드시 거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뇌물이 될 수 있는 것으로서 가령 향연을 베푼다거나 금융의 이익, 채무의 변제, 공사의 직무, 기타 유리한 지위, 성매매 같은 것도 뇌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연말이나 명절에 의례로 제공하는 선물이나 답례품 같은 것은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도를 넘는 고가의 것이 아닌 이상 뇌물이라고 할 수 없다.

뇌물이 지니는 특성은 그것이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금품이나 혹은 액수나 수량의 과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에 있는 것이다. 뇌물은 그것을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이나 특별한 편의를 구할 때 수단으로 쓰인다. 물론 선물도 어느 정도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하나의 방편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뇌물과 선물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뇌물은 금품을 써서 상대방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지만 선물은 우정이나 사랑, 혹은 존경의 표시로 쓰인다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한 표시가 지나쳐서 상대방을 거북하게 하거나 부담을 주었다면 뇌물의 요소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뇌물은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금품이나 그 밖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얻고자 하며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려는 수단으로 쓰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질서가 파괴되고 구성원의 의욕이 상실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율기편 청심 조항에서 '지자이렴(知者利廉)'을 역설한 바 있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청렴이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이로운 것인지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을 알고 있다. 작은 뇌물이라고 선뜻 받는데 습관이 되면 결국 큰 뇌물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게 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

더 중요한 것은 뇌물수수가 관행이 될 때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법질서가 무너지며 그 공동체 자체가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사실이다. 뇌물의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나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데 그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국가가 부강하더라도 문화적 자긍심과 도덕적 자존심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혼탁한 영혼으로 무너져가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항상 부정과 부패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뇌물은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기강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주요인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국가의 고위 공무원일수록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더욱 청렴해야 한다. 성숙한 사회를 가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혼탁을 탓하기 전에 우선 각자가 작은 뇌물이라도 스스로 주거나 받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엄정식(서강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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