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21세기,지금도 진행형인 노예제… ‘보이지 않는 사람들’

[책과 길] 21세기,지금도 진행형인 노예제… ‘보이지 않는 사람들’ 기사의 사진

보이지 않는 사람들/E. 벤저민 스키너/난장이

"100달러요." 콧수염에 색색의 줄무늬 셔츠, 짝퉁 브랜드 구두를 신고 있는 남자가 가격을 부른다. "50달러로 깎아주시죠"라고 하자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러죠"라고 한다. 거래는 성립됐다. 이들이 거래한 물건은 다름 아닌 사람. 열 살 안팎의 남자 혹은 여자아이다. 용도는 사는 사람 마음이다. 가사 일을 시키든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든 개의치 않는다.

역사책 한 귀퉁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2005년 10월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 직접 체험한 노예쇼핑 현장이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노예 판매 현장을 생생히 담은 르포다. 스키너는 수단, 루마니아, 인도 등에서 인간을 사고팔고 버리는 충격적인 현장으로 안내한다. 그가 보여주는 노예의 삶은 처절함 그 자체다. 고된 노동과 비인간적 대우, 음식 찌꺼기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갖은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 상태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전한다.

그는 노예를 세 가지 요건으로 정의한다. ①강요나 사기를 통해 ②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③강제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노예라는 것. 단지 임금에 비해 많은 노동을 강요받는 사람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라고 스키너는 강조한다.

아이티에서 팔려간 아이들은 '더부살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부모가 돈을 벌려고 아이를 파는 건 아니다. 중개업자가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 순순히 아이를 보낸다. 아이티 학교의 80%가 사립이고 도시 고등학교의 1년 등록금은 385달러로 아이티인의 연간 소득을 웃돈다. 하지만 더부살이의 80%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

노예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빈곤 때문이다. 루마니아, 몰도바 등 동유럽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노예매매가 활발해졌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화폐 가치 하락으로 재산은 휴짓조각이 되고 국가는 기능을 상실했다. 이때를 노려 인신매매 조직은 젊은 여성을 매춘도시 암스테르담 같은 곳으로 유인해 팔아넘기며 큰 이득을 챙긴다. 90년대 이후 시작된 루마니아의 인신매매는 연간 거래액이 100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만연했다.

인도는 어떤가. 10억명이 넘는 인구 중 6억명이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고, 그중 2억6000만명은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삶을 유지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노예이고 어린이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인도의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 같은 사회적인 문제도 노예제를 견고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저자는 지금까지 노예 근절 노력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노예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성노예제만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 근절을 위한 창의적인 접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전반적인 양심을 일깨울 수는 있지만, 개개인의 양심을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당장 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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