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정철훈 전문기자의 ‘작가 오디세이―뒤집어져야 문학이다’

[책과 사람] 정철훈 전문기자의 ‘작가 오디세이―뒤집어져야 문학이다’ 기사의 사진

정철훈은 문학 깊숙한 곳을 찌르는 양날의 검을 갖고 있다.

우선 그 자신이 프로 작가라는 점이 한쪽 칼날을 이룬다. 1997년 ‘창작과 비평’ 봄 호에 6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시집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개 같은 신념’과,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 등 무게 있는 작품들을 발표해 평단의 상찬을 받았다. 동시에 10년 이상 문학 동네의 중심과 변방을 관통하며 밥벌이를 해온 정예 기자라는 점이 또 다른 칼날을 이룬다. 회사에서 “회의해야 하는데 왜 회사에 안 들어오느냐”라고 하면 “저는 밖에서 고은 선생하고 회의하는 걸로 갈음하겠습니다”라고 답했던 게 기자 정철훈이다.

문활론자(文活論者)로 일컬어질 정도로 비범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이자 취재 현장에서 뼈마디가 굵을 대로 굵은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 이 양날의 검을 갖춘 정철훈이 문학을 날카롭게 파헤칠 때 평론가들의 책상머리 주례사와는 거리가 먼 약동하는 르포성 독해기가 생성되고, 웬만한 문학담당 기자들은 구현키 어려운 도저한 문장이 수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수련을 거쳐 체화한 정철훈의 이 같은 양날 검법이 있는 힘껏 구사된 끝에 ‘작가 오디세이-뒤집어져야 문학이다’(중앙북스)로 출간됐다. 왜 뒤집어져야 문학인가. ‘반경 백 미터 내에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원폭적 광기와 독기’가 작품의 근저임을 간파하고 있는 정철훈은 문학적 원천이 된 작가들의 깊숙한 상처를 뒤집기 위해 그들의 속모를 눈동자에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왔다. 작가가 뒤집어져야 문학이 나오고, 또한 작가를 뒤집어봐야 문학이 파악되는 것이다.

1980년 생 신예 김애란으로부터 작고한 박경리, 김춘수, 서정주까지, ‘몇 번이고 인생을 뒤집던 불우의 전력을 문장의 저력으로 환원시킨 광인’ 33명의 이야기가 이 한 시절의 속기록에 담겨 있다. 예컨대 고교 중퇴 이후 자발적 유배 생활을 견지하며 외로움의 극단에서 시를 쏟아낸 김경주, 고교 때 늘 바닥을 헤매던 15등급의 성적 때문에 다른 반으로 옮기라는 담임선생님 말을 귀에 달고 살았던 박민규, 지독한 쓸쓸함에 우물처럼 차가운 눈빛을 가진 허수경, “박종철 때문에 고문을 안 당했고, 권인숙 때문에 성고문을 안 당했으며, 이한열 때문에 최루탄을 안 맞은 것이죠.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부채가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광장의 딸 공지영, 구로공단 동남전기주식회사 스테레오과 생산부 A라인 출신 신경숙, 갑자기 녹아내린 이빨 6개를 ‘칼의 노래’에 봉헌한 김훈, 누구보다도 정치적 강박을 자신의 문학에 이용하는 이문열, 스물네 살 때 김동리를 만나 운명적 사랑으로 젊음을 소진했던 서영은, 남로당 경남도지부 2인자였던 월북 부친을 둔 김원일, 유신 정권에서 모진 매질의 고문을 겪어야 했던 현기영 등등.

이들을 면담한 정철훈의 속기록에는 치열한 기자다운 현장 밀착성이 도처에 포진해 있다.

“그와 함께 식당에 들러 식사를 마치고 몇 걸음 걸어 나왔을 때 주인 아주머니가 뒤에서 다급하게 불렀다. ‘선생님, 또 윗도리와 스카프를 두고 가셨네요.’ 그건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었다. 이 세상이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윗도리와 스카프 또한 빌려 입듯, 한번 가지고 있을 뿐,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초월과 무경계의 발현으로서의 건망증이 아니었을까. 그를 바라보면 꿈과 현실의 경계 어디쯤에 서 있는 듯 멍해진다.”(문단의 프리다 칼로- 서영은)

“그러나 이 말이 곧바로 말로 형상화된 것은 아니었다. 입에서는 어버버버 하는 격한 발음만이 튀어나왔다. 손정순 대표가 옆에 앉아 필담을 나눈 후에 수화기를 대신 받아 들고 만날 장소와 일시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노트 위에 무엇인가 써내려갔다.”(실어증의 안개-김승옥)

“수많은 평자들의 눈을 개안시켰던 이 당대의 필객은 실상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거대한 벽이자 절망의 이름이었다. 그와 대담하는 동안 첫 마디를 듣기까지는 실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냉장고에서 찬 맥주 대여섯 병을 가져다 목이라도 축이라며 연신 따라 주었다. 몇 잔을 거푸 비우는 모습을 지켜본 연후에야 그는 장편 ’산해기‘를 출간한 심정에 대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소설에게 동양의 젖을 물리다-박상륭)

“웬 낮도깨비인고. 무슨 특무대처럼 불쑥 나타났구먼. 안 좋은 때 왔어. 내가 병석에 누워 있는 줄은 알겠지.”(누가 미당의 이마를 짚을 것인가-서정주)

아울러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학 작품을 형성하는 강렬한 직관과 감수성의 문장들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200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서 장은수는 ‘카인의 정원’을 통해 본 정철훈의 문장에 대해 “오직 문장이 홀로 서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면서 뇌리 속으로 파고든다. ‘무진기행’에서 안개가 그러했듯이, 이 끈질긴 문장들이 서로 쉼 없이 엉겨 붙으면서 가지를 치고 뿌리를 내려…. 불의 심판이라도 받은 듯 모든 것이 들끓고 있는 그 도가니의 안팎에서 독자들은 한국 문학이 일찍이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세계와 운명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이런 작품은 앞으로도 함부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렇다고 ‘뒤집어져야 문학이다’가 찬사 일변도의 문단 교우기 정도로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가령 그는 “(김지하가) 합리적 논증 대신에 신비적 직관 쪽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는 비판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또 “강박증에 가까운 (이문열의) 멘털리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색적인 표현은 이 소설을 또 다른 수구 언론의 몸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보여 준다”라고 분석한다.

정철훈은 문학을 처절한 고통이자 치유의 세계로 인식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그 외로움에 시종 복무하는 게 문학인 것이다.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이 아니던가.”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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