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길짐승 가축의 대표선수랄 수 있는 게 소와 개, 돼지다. 그러나 소·개와 돼지는 '격'이 다르다. 소와 개는 진지하게, 때로는 농으로라도 각각 우공(牛公), 견공(犬公)으로 불리기도 하는 반면 돼지에는 돈공(豚公)이라는 존칭(?)이 붙지 않는다. 또 소와 개에는 각종 미담이 따라다니지만 돼지에 관한 미담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돼지는 가축 중에서도 '신분'이 낮다. 식용 외에 나름대로 일을 하는 다목적용인 소·개와는 달리 그저 먹기만 하는 돼지의 모습이 눈을 흘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돼지의 이미지는 거의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미련하고 욕심 많고 게으르고 더럽고 먹을 것만 밝히고 등등….

문학 작품에 나타난 몇몇 돼지만 봐도 그렇다. 우선 '서유기'의 저팔계. 돼지답게 게으르면서도 식탐, 색탐이 압도적인데다 시기심도 많아 주인공인 손오공을 질시하면서 모함을 하기도 한다. 그 다음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돼지 나폴레옹. 옛 소련의 스탈린을 모델로 한 게 분명한 이 독재자 돼지는 음험하고 잔인하며 무자비하고 욕심이 많다.

이런 돼지가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동물로 나타난 작품이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다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 베르베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 이 소설에서 돼지를 사람의 조상으로 만들었다. 인류는 원숭이와 돼지의 교배로 탄생한 종이라는 것.

물론 조크다. 하지만 거기엔 그럴 듯한 '과학적' 배경이 있다. 유전자로 봤을 때 인간은 원숭이와 가장 가깝지만 희한하게도 이종(異種)장기이식에 관한 한 돼지가 가장 인체에 적합하다는 사실.

그래서 현실에서도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거니와 국내 연구팀이 최근 장기이식용 복제 돼지를 세계 두번째로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다만 그렇다고 당장 실용화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기증된 장기가 턱없이 부족해 하염없이 이식을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사람들에게 양질의 고기를 제공해주고(무슬림 제외) 나아가 귀중한 생명까지 구해줄 가능성이 큰 돼지들에도 이제는 '돈공'이라는 경칭을 부여해주는 게 어떨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