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씨 신작 장편소설 ‘우주피스 공화국’

하일지씨 신작 장편소설 ‘우주피스 공화국’ 기사의 사진

‘원초적 기억’ 좇는 미로 속 여정

소설가 하일지(54)씨는 2005년 여름을 경남 합천의 산사에서 났다. 불자는 아니지만 산사의 정적이 글쓰기를 정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때 초고를 잡은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민음사)이 4년 만에 출간됐다. 수년 전 미국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가 체류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이 집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우주피스'는 리투아니아 말로 '강 건너'라는 뜻이다. 소설은 '할'이라는 남자가 자신은 전혀 거주한 기억이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에서 촬영된 옛날 자기 사진을 보고 그 공화국을 찾아가는 여로를 다루고 있다. 원초적 기억 속에 잔영처럼 아련히 남아 있는 어떤 시원을 쫓는 할은 동양인 남자로 그려지지만 그 캐릭터에는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Han) 주재 우주피스 공화국 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Han)에서 살다 우주피스가 주변국에 점령되자 망명한 후 우주피스가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유골을 묻기 위해 우주피스로 향하는 할의 여정은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트랜스내셔널(탈국가적)의 감칠맛을 북돋는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도착한 할의 행선지는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 국경 어딘가에 있다는 '우주피스 공화국'이다. 그런데 우주피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리송하다. 택시기사는 한참을 헤맨 끝에 할을 빌뉴스 내의 '호텔 우주피스'에 내려주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주피스 공화국'이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농담 공화국일 뿐이라고 비웃는다. 게다가 할은 우주피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두 우주피스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언가 진실을 은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가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는 일을 방해한다. 그럴수록 할의 집착은 더욱 집요해진다. "내가 믿든 믿지 않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거지요. 내 조국 우주피스 공화국처럼 말이에요."(105쪽)

과연 우주피스 공화국은 어디인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하는 할의 질문은 하나의 완벽한 미로를 연상시킨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우주피스 공화국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를 스스로 묻게 되는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미궁으로 미끄러진다.

강 건너 저쪽을 의미하는 피안의 세계로서의 우주피스 공화국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나라다. 아름다운 여인 요르기타는 자신의 남편 역시 우주피스를 찾아 헤매다가 자살했다고 말하고, 길에서 만난 꽃 파는 소녀의 할머니인 또 다른 요르기타의 남편 역시 우주피스로 가려다 자살했다는 사실에 접한 할은 이 영원한 미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미궁에 대한 미궁의 선택이 죽음이지만 할의 자살로 지금까지 전개된 서사가 붕괴되는 듯한 야릇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가 이러한 서사 구조를 택하기까지 고뇌했던 흔적은 작품 후반에 할이 연극 연출자 알비다스와 나누는 대화에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다. "인사이드 뷰는 삶을 재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노골적 기능성 때문에 현대 연극에서는 자제하지 않는가 해. (중략) 물론 인사이드 뷰를 완벽히 제거하고 아웃사이드 뷰로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그래서 현대 연극은 이야기 자체를 파괴하는지도 모르지."(262쪽)

동덕여대 교수 재직 중 안식년을 맞아 현재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에서 작품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하씨는 "작가는 작품으로만 독자를 만나야 한다"며 인터뷰를 사절했다.

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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