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류 시인 이옥봉 삶 펴낸 은미희씨 “詩와 사랑을 위해 온몸 불사른 여인”

조선 여류 시인 이옥봉 삶 펴낸 은미희씨 “詩와 사랑을 위해 온몸 불사른 여인” 기사의 사진

"사랑은, 언제나, 사랑을 더 많이 하는 쪽이 약자일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모든 사랑은 아프죠. 이옥봉이란 여자가 있었지요. 그녀의 잘못은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다는 데 있어요."

조선 중기 황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동시대를 호흡하며 시와 사랑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여류 시인 이옥봉의 삶을 손끝에서 되살려낸 소설가 은미희(49·사진)씨의 음성은 진중했다. 그가 소설로 만진 이옥봉의 삶은 500년 상거의 저쪽이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거덜나버린 이옥봉의 사랑법을 관통해버린 착잡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재현하기 위해 글이라는 몸을 만들어가야 했던 작가의 심경이 궁금했다.

"요즘 누가 절절한 사랑에 목을 매겠어요. 누구나 다 순애(純愛)에 대한 꿈은 갖고 있겠지만 자신의 자존감에 상처받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죠. 그게 아마도 제 자신을 닮은 것도 같고요. 사랑받는 여류 시인으로 한 세상, 고아하게 살다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한 사람을 사랑하여 그리 아파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 써 내려간 소설은 사랑의 치명적 독성이 어떻게 한 인간을 참혹하게 변화시키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선조 때 옥천 군수의 서녀로 태어나 선비 운강 조원의 소실이 된 이옥봉만큼 시를 사랑했던 인물도 없을 것이다. 시 때문에 살고 시 때문에 죽고 다시 시 때문에 문학적으로 부활했던 여인. 거문고를 사이에 두고 읊조리는 옥봉과 운강의 대화는 서로를 바라보는 연모의 격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다. "밖으로는 있음에서 체득하지만 안으로는 없음에서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어찌 줄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옥봉) "그 줄은 쓰지 않고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운강)

거문고 한 줄 한 줄에서 신음 앓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랑에 들뜬 옥봉과 운강의 열정을 작가는 이렇게 포착한다. "요분질을 해대고 이불이 밀리도록 뒹굴었다. 촛농보다도 뜨거웠고 밤보다도 깊었다. 그 깊고 은밀하고 격렬한 몸짓에 시간도 멈추었다. 시만 짓고 살겠습니다. 옛 맹세는 유효했다. 다만 시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그 시는 곧 운강이었다. 그게 시였다."(240쪽)

뜨거웠던 사랑도 식을 때는 야속할 만큼 빠르다. 두 번 다시 시를 짓지 않겠다던 맹세를 깨고 한순간의 방심으로 산지기의 아내에게 시를 지어준 옥봉은 운강에게 버림받는다. 거리로 내쫓긴 옥봉은 중국행 선박에서 바다에 몸을 던지지만 그 죽음이야말로 사랑의 마지막 표현이었던 것이다. 온몸을 시를 쓴 한지로 염을 하듯 둘둘 감은 채 떠오른 옥봉의 시신. 한 중국인이 시신을 거두고 시를 수습해 한 권의 시집을 발간했으니 그게 오늘날 전해내려오는 시 32편의 옥봉 시집이다. "요사이 안부 묻사오니/어떠하신지요/창문에 달 비치니/이 몸의 한은 끝이 없사옵니다/제 꿈의 혼이 발자취를 낸다면/임의 문 앞의 돌길은 모래가 되었아오리"(이옥봉 '홀로 읊노니')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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