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권위 위협받는 父性 선사시대 탄생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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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란 무엇인가’/루이지 조야/르네상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지 오래다. 고개 숙인 아버지, 그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역사시대 이래로 사회의 등불이자 가정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과연 아버지가 존재하는가. 진정한 부성(父性)은 존재하는가. 이 책은 아버지가 탄생한 선사시대부터 아버지가 실종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이고 심리적이며 문화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 관점으로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디에서 시작된 존재이며, 가족에게 있어 부성의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인간이 동물들과 달리 일부일처제 개념의 가족을 형성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이후 인간 문명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아직까지도 그들이 남겨놓은 동일한 사회제도 아래 살고 있다.

남성의 역할과 권한이 분명해진 것은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로이 왕 헥토르는 영웅서사시의 세계에 거주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가장 순수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강인한 남성상을 대표하는 헥토르는 애국자이자 동시에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사실 애국자(patriot)와 아버지(pater)라는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헥토르가 포도주를 권하는 어머니에게 한 말은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용감무쌍한 남성의 캐릭터를 대변하고 있다. "저에게 포도주를 권하지 마세요. 어머니, 술을 마시면 힘도 잃고 용기도 망각하게 됩니다. (중략) 그보다는 어머니, 당신이 가진 옷 중 가장 화려한 것을 들고 트로이 여인들과 아테나 신전에 가서 선물로 바쳐 주십시오."

그리스·로마시대의 아버지에 대한 신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등 서사시 속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고대 그리스는 제도적으로 부성적 권위를 확고히 함으로써 아버지가 가족들 곁을 떠나 있더라도 아버지 없는 가정은 생각될 수 없었다. 가족들의 정서는 모두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중심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아버지는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저임금을 이유로 여성들과 아이들을 선호하는 산업화의 새로운 상황은 가족 경제를 책임지고, 불멸의 존재로 여겨졌던 아버지에게 커다란 타격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의 권위가 닿을 수 없는 공장으로 멀어졌고, 이곳에서 새로운 위계질서를 습득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아버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전쟁에 참가한 아버지들은 자식이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아버지들도 가정에 남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든 심한 수치심과 오명을 견뎌야 했다. "아빠, 전쟁 동안 아빠는 무엇을 하셨어요?"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아버지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세계화 추세는 아버지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지구촌 시대에 남성들은 세계를 정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아버지들은 하루 평균 자식들과 7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한다. 모든 역사적인 시기를 비교해 봐도 자식을 양육하는 아버지의 참여는 어머니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 때문에, 그리고 가족과의 단절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으며 방황하고 있다고 책은 진단한다. 부인과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신적인 애정이나 보살핌이 아니라 오직 금전적인 경제능력뿐이다. 사회가 아버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족의 생계에 발목이 잡힌 사슬 없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들의 인생에 아직도 아버지라는 인물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를 비판하고 가정 바깥으로 내쫓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를 감싸주고 그가 고민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문명사회를 누리는 우리 모두의 임무이자 역할이다. 부성의 후퇴는 곧 문명의 후퇴이기 때문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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