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이 발각된 것을 계기로 정부의 특수활동비 전반에 대한 감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특수활동비는 쉽게 말해 공무원이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기밀비(機密費)다. 별도 편성된 업무추진비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 집행지침'은 특수활동비를 특정한 업무 수행과 사건수사 활동에 쓰도록 규정했다. 작년 청와대를 포함한 20개 기관이 8503억원을 특수활동비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특수활동비가 편성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음이 드러났다.

'특정한 업무'라는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구속력이 없다. 수사와 정보수집 활동 말고도 둘러댈 수 있는 용도를 인정한 것이다. 특수활동비 집행 규정도 지나치게 느슨하다. 감사원의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는 지급 상대방에게 영수증을 요구하기가 적당하지 않은 경우 그 사유와 지급목적, 지급액 등을 명시한 공무원의 영수증서로 대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사용처가 밝혀지면 목적 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집행내용 확인서도 생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비용 부풀리기나 사적 유용 등 부정 사용의 여지가 넓은 것이다.

실정이 이러니 청와대에서 일어난 횡령 규모가 이번에 밝혀진 12억5000만원뿐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전 정권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같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다른 기관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국가정보원은 작년 특수활동비로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4766억원을 사용했고, 국방부 1605억원, 경찰청 1297억원, 법무부 270억원 순이다. 권력기관들이 사용하는 방대한 예산이 감시에서 벗어나 있다. 특수활동비를 회계감사의 사각지대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수활동비 횡령과 부정사용을 막으려면 지침을 고쳐 적용 업무를 구체화하고 집행내용 입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도록 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 교체 때마다 특수활동비 때문에 홍역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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