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첩] 이응로와 남관의 사후 ‘동행’

[문화수첩] 이응로와 남관의 사후 ‘동행’ 기사의 사진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 미술계에서는 꽤 요란하고 험악한 공방이 벌어졌다. 한국 추상미술계의 두 거목인 고암 이응로(1904∼1989)와 남관(1911∼1990) 화백이 작품 표절 여부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한 것이다. 이들은 미술 전문지도 아닌 중앙일간지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글을 노골적으로 게재해 화단 차원을 넘은 사회적 이슈를 촉발시켰다.

불길을 먼저 댕긴 것은 이응로였다. 그는 1973년 3월2일 프랑스에 거주 중인 상황에서 국내 한 일간지의 '시론' 코너에 '창작과 모방'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내 예술작업은 1960년 이후 종이 붙이기(빠삐에 골데)나 상형문자를 바탕으로 한 독창성의 발견과 예술화에 대한 집념의 소산이었음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일"이라며 이름 있는 한 후배가 자신의 작품을 모방하는 '사기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응로가 겨냥한 후배가 문자추상 작품 등에서 유사성을 보여온 남관이었음은 명약관화했다. 이에 발끈한 남관은 한 달여 뒤 같은 일간지에 '작가와 교양'이라는 반박 글을 게재했다. 그는 "빠삐에 콜라주나 상형문자를 화면에 이용하는 것을 자기가 창조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론이 아닌 궤변으로 자기선전 하지 마라"고 선배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미국에 머물던 김흥수 화백까지 논쟁에 뛰어들어 감정싸움은 확대일로를 걸었다. 김흥수는 '작가와 양심'이라는 글에서 남관이 이응로 작품을 베껴 '재불 한국미술인전'에 먼저 출품했다는 요지를 전개하고 남관을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남관은 '어글리 코리안은 누구인가'라는 시론을 다시 실어 '허무맹랑한 조작' '모략에 능한 인간' '불량배' 등의 거친 표현으로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국 이응로와 남관의 공방전은 볼썽사납다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 밀려 대외적으로는 수그러들었지만, 서로를 향한 날 선 감정은 작고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두 사람의 작품 100여 점이 3개 층에 걸쳐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전시회 제목이 '동행'이다. 작품 세계의 유사성을 들어 화랑 측에서 억지로 '사후 화해'를 시킨 형국인데, 그토록 떠들썩하게 '파행'을 빚었던 두 고인이 하늘에서 이 전시회를 본다면 흐뭇해할까, 아니면 떨떠름해할까.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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