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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진보와 보수


나는 진보일까 보수일까. 이는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질문만큼 부질없어 보인다.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고 판단될 땐 보수 쪽에 서고, 그 반대일 땐 진보 쪽에 서게 된다. 즉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 입장을 선호하는 것이지 늘 일방으로 경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진보, 보수는 고착화되어 있어서 반대편으로 넘나들기를 거부한다. 한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인 것이다. 기득권 유무, 재산의 과다 등 자신의 현 위치가 이를 결정해 준다. 공동의 선이 아닌 개인의 이해득실이 개입되다 보니 자신의 단점보다는 상대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인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의 우려스러운 대립들이 여기서 출발한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도 진보와 보수로 나뉜다. 규범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규범을 지키자는 쪽과 규범을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쪽이 맞선다. 연신 흐르는 눈물, 장미꽃 피는 뜨락, 향긋한 봄 내음…. 이들 표현 가운데 연신, 뜨락, 내음은 방언으로 규정됐다. 보수 쪽은 이들을 표준어인 연방, 뜰, 냄새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 쪽은 방언이 표준어보다 더 와 닿는다며 그냥 쓰자고 한다. 언어 현실을 감안하면 진보 쪽을, 원칙을 감안하면 보수 쪽을 지지하고 싶다.

나라의 언어 정책을 다루는 국립국어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난감해하는 듯하다. 국가기관의 특성상 보수적인 자세에서 말법을 따라야 하지만, 국민의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는 관점에서는 규정 밖의 언어를 외면하기도 뭣하다.

신임 권재일 국어원장이 얼마전 취임하면서 밝힌 말이 와 닿는다. 자신의 저서 제목에 '상상의 나래'라는 말을 쓰려다 표준어에 맞게 나래를 날개로 고쳤다고 한다. 그렇지만 날개와 나래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며, 이런 점에서 어문 규정을 개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1988년 개정된 표준어 규정이 20년 넘도록 그대로다. 개정 당시엔 방언이었지만 지금은 표준어 자격을 지닌 말이 수두룩하다. 이들을 계속 방언으로 남겨 두면 일상의 불편을 낳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유발한다. 굳이 때를 기다려 크게 고치기보다는 급한 부분부터 조금씩 손을 대는 것이 어떨까.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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