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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행운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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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선원들이 아마존강을 항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스페인 배 한 척이 강 위에 둥둥 떠 있었다. 페루인들이 배에 올라가 보니 수십명의 스페인 선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페루인들이 스페인 선원들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에게 물을 좀 주세요. 우린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어요." 페루인들은 아마존 강물을 퍼올려 죽어가는 스페인 사람들을 먹였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곧 정신을 수습했다.

스페인 선원들은 사실 넓은 아마존강 위에 떠 있었다. 그들은 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들이 바다 가운데 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존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환경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느낀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스페인 선원처럼 환경만 보고 좌절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이름의 바다다. 새로운 세계를 머릿속에 상상하며 콜럼버스처럼 앞으로 항해하는 사람은 곧 희망을 되찾게 된다. 하나님은 혼돈과 흑암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기업도 가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제불황보다 무서운 것이 절망이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면 고통은 그만큼 오랫동안 지속된다. 절망의 시대에 나타나는 퇴폐적 현상이 한탕주의다. 점집들은 여전히 성황이다. 1년 점술산업이 4조원, 역술인이 45만명, 역술 사이트가 200개에 이른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지갑 속에 달랑 남은 지폐 몇 장을 로또복권에 투자하는 허전한 마음들도 염려스럽다.

불행은 항상 현실을 외면한 데서 출발한다. 행운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운수'다. 요행은 '뜻밖의 행운'이다. 요즘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첫 계단부터 오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씨앗을 뿌리지도 않으면서 열매를 기대한다. 각종 복권이 범람하는 것도 그런 심리들 때문이다. 빠르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수명도 짧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무가치하다. 땀 흘려 힘들게 성취한 것들이 진정 기쁨을 가져다준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많은 세 잎 클로버를 짓밟는다. 발 밑에 짓밟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행운을 얻기 위해 행복을 유린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의 많은 현대인들이 행운을 좇아 행복을 짓밟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크리스천은 절망이 없다. 크리스천은 포기가 없다. 절망과 포기는 곧 죄악이다. 왜 그런가. 크리스천에게는 절망의 밤에 더욱 빛을 발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갖지 못한 소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다.

개는 호랑이의 적수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나 곰이 사냥개에게 꼼짝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냥개 뒤에 총을 들고 나타날 주인이 두려워 도망가는 것이다.

사냥개는 극단적인 위험의 순간에 자신을 지켜줄 주인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용기를 발휘한다. 하물며 인생의 주인을 믿는 사람에게 절망이 있을 수 없다.

이제 탄식을 접자. 희망을 노래하자.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우주의 창조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두려울 것이 없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다. 이제 세 잎 클로버를 선택하자.

임한창 종교부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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