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너머] 3부 新남촌,강남―성장의 속도 ⑤ 영동시장,강남標 재래시장

[공간+너머] 3부 新남촌,강남―성장의 속도 ⑤ 영동시장,강남標 재래시장 기사의 사진

'공간+너머'는 문화지리학 시각으로 본 공간문화사이다.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북촌', 근대문화의 태동지였던 명동 중심의 '남촌', 우리 힘으로 탈근대하며 척박한 땅에 문화를 일궈 나가는 '신(新)남촌' 강남을 들여다본다. 권력과 자본의 이동경로이기도 한 이 축은 한국사의 민얼굴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살짝 낯선, 이색 지대다. 잘 정비된 화원 속에 핀 야생화라 해야 할까? 평소에 늘 보았던 평범한 재래시장이건만, 영동시장은 뭔가 다른 울림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세월의 마모를 견디고 살아남은 존재에 대한 고마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개발의 논리에 밀려 결국 언젠가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뒤섞인 복합적인 그 무엇이다.

개발이 만든 현대속 근대 강남시민 ‘생활의 발견’

문학작품들 속에서, 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재래시장은 언제나 토포필리아(場所愛)를 자극하는 낭만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곳은 피로에 지치고 푸근한 인정이 고픈 이들이 찾아들어 허기를 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재충전의 기회를 얻는 생활의 광장이며 삶의 부활을 경험하는 가장 세속적인 성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래시장의 풍경과 분위기는 언제나 정겹고 아름답다.

'정겹다'는 말, '아름답다'는 말들은, 실로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그러나 이는 가진 자들 또는 제3자들이 누리는 정서적 호사일 것이다. 첫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신산한 삶들이 진득하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가는 고단한 생존의 현장이 장터의 진짜 면목일 터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찌들고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우리가 재래시장에서 얻어오는 활력과 위안은 어쩌면 시장상인들의 고단한 생존의 몸부림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대한 자의적 곡해의 소산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강남의 번잡함을 피해 지하철 논현역 1번 출구로 빠져나와 학동역을 향해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거나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만나게 되는 아담하고 평범한 시장. 그곳에 영동시장이 있다.

곡우(穀雨)의 뒤끝이라 일기가 고르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봄날 정오의 영동시장은 고즈넉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경기가 없는 한산한 시간대이기도 했지만 왠지 세계적으로 깊고 넓은 침체의 그늘이 시장의 활기를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장 초입의 떡집에서 인절미 한 팩을 사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단출한 단문형의 답변만 돌아온다. 겨우 2000원어치 떡을 사놓고 자꾸 묻는 것도 염치없는 노릇이어서 일없는 산책자의 역할에나 충실하기로 했다.

재래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영동시장은 유구한 역사성과는 거리가 먼 작고 젊은 시장이다. 1969년 말에 완공된 제3한강교(한남대교)의 착공을 전후하여 시작된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로부터 강남 개발붐을 타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연발생성과 30여 년 동안 구축된 강남의 귀족적 이미지로 인해 골목길의 영동시장은 여전히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과 현실 속에서 분명히 실재하는 시장이지만 이곳은 행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공간이다.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에 267개의 점포가 들어 서있는 동화상가를 제외하고 골목에 산재한 점포들은 관할 강남구청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통념과 실제 현실의 거리는 이만큼 멀다. 시장의 구석구석을 돌며 시장 상인들을 만나고 논현동 주민자치센터, 강남구청, 강남문화센터 등을 차례로 들렀지만 귀가 번쩍 뜨이는 정보는 없었다.

강남이 아직 서울이 아니었을 때 이곳 영동은 서울시민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던 근교농업 지대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하급 무관들이 모여 살던 왕십리에서 사대문 안에서 소요되던 부식거리를 도맡았던 적이 있었다. 화학비료가 있을 리 만무하던 시절인지라 인분과 퇴비를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파리 등의 벌레가 많았다 해서 조선시대 왕십리 주민들 또는 하급 무관들을 가리켜 '왕십리 똥파리'로 불렀다는 야사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아주 오래전 밑도 끝도 없는 '불광동 휘발유'란 말도 얼핏 들어본 적도 있었건만, 이곳에서 온종일 발품을 팔았어도 빈손이다.

별도리가 없어 문헌실증주의로 방향을 틀어보았다. 제법 자료가 걸려들었다. '강남 이야기로 보다'(서울역사박물관 간)와 '2007 구정백서'(강남구청 간)가 다소 도움이 됐다. 목록에는 있었으나 구해보지 못한 '강남구 향토지'가 앨범 속의 그리운 옛 동창들처럼 못내 아쉬웠다.

우리네 정서로 진짜 시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골목의 영동시장(정말 미안하지만 문화지리학의 관점에서 대형상가나 할인마트는 시장이 아닌 다른 개념과 용어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이 소재한 논현동은 본래 '논고개'라는 지명에서 유래했으며 63년 법률 제 1172호에 의거하여 논현리는 서울시 논현동으로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60년대 후반기에 입안되어 착수된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 및 고속도로 공사'를 거쳐 '불도저'란 별칭을 얻은 김현옥 서울시장과 후임 양택식 시장에 의해 '영동신시가지개발계획'이 시작된 70년대 초반기를 지나 논현동과 학동 일대에 신시가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만이 지상과제였던 박통시대, 오로지 앞만 보고 일사불란하게 앞으로만 내달렸을 법한 이 속도의 시대에도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습속과 전통이 우리 조상이 대대손손 그래왔듯이 인간의 냄새 물씬 나는 장터 하나를 만들었다. 개발도상의 현대가 뜻하지 않게 근대를 창조해낸 셈이다. 이 점에서 영동시장을 전통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관습의 피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신흥경제강국 한국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한국판 베벌리 힐스 강남. 이곳에서도 인간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타워 팰리스'와 영동시장이 함께 공존하는 다양성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같은 극심한 침체와 양극화의 시대 이런 공존의 윤리는 얼마나 소중하고 절실한가.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문득 인간이 그립고 고향이 생각날 때 우리, 영동시장으로 가자. 강남대로변 지하철 7호선 논현역, 그곳에 영동시장이 있다.

◇글 조성면

1965년생.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석사(한국어문학), 인하대 박사. 평택대 대우교수 역임, 현재 인하대 강의전담교수. 저서로 ‘대중문학과 정전에 대한 반역’ ‘한국문학 대중문학 문화콘텐츠’ ‘한국 근대 대중소설 비평론’ 등. 그외 다수의 논문, 평론 등이 있음.

◇그림 모용수

1968년생. 원광대 미대와 같은 대학원 졸업. 제11회 신미술대전 최우수상, 구상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일 참우정의 형태전’ ‘한국화-오래된 미래 일레븐 한국화전’ 등의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개인전 23회. 민화를 바탕으로 한 화법으로 일본 컬렉터들에게 인기다. 하나은행 본점, 서울삼성의료원 등이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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