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신성철] 꿈의 신물질 ‘그래핀’ 기사의 사진

지난달 미국 피츠버그에서 미국물리학회가 개최됐다. 매년 3월 개최되는 이 학회는 물리학 분야 세계 최대 학회로 최신 연구 결과와 동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행사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과학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올해도 1만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석,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학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끈 주제는 탄소로 구성된 '그래핀(graphene)'이라는 새 물질에 대한 연구 결과였다. 탄소는 원자번호 6번으로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원소다. 연필심에 사용되는 흑연이나, 물질 중 강도가 제일 강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도 모두 탄소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해온 탄소물질에서 그래핀이라는 특이한 구조의 신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 발견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나 할까.

같은 원소로 구성돼 있지만 구조가 다른 물질을 동소체(同素體)라고 한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 성분으로 이뤄졌지만, 구조가 다른 3차원 탄소동소체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물성과 모양을 갖게 되고 값어치도 천양지차다.

중심을 지나는 3개의 가상 축이 서로 직교하며 길이도 같은 등축정계 구조의 다이아몬드와 달리, 흑연은 탄소가 벌집 모양처럼 육각형으로 연결된 평면을 수없이 쌓아올린 3차원 구조다. 육각형 벌집 모양 한 층에 해당하는 물질이 바로 그래핀이다. 좀더 쉽게 풀이하자면 육각형 타일로 쌓아올린 건축물의 한 층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 층의 두께가 탄소 원자 한 개의 지름인 100억분의 2m이니 인류가 만들 수 있는 2차원 물질 중에선 가장 얇은 두께의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지난 70여년간 2차원 물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해 왔으나 대부분의 물질은 상온에서 열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완벽한 2차원 구조를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러다가 2004년 독일 출신의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 연구팀이 상온에서 완벽한 2차원 구조의 탄소동소체인 그래핀 제작에 성공했다. 70여년 만의 연구 성공은 역설적이지만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가능했다. 스카치테이프의 접착력을 이용, 흑연을 한 층씩 떼어낸 것이다.

흑연 한 층에 불과한 그래핀에 전 세계 과학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얼까. 먼저 그래핀에서는 보통 물질에서 볼 수 없는 전자의 운동을 볼 수 있다. 즉, 그래핀 구조에서는 질량이 제로인 전자가 광속에 근접해 움직이는 특이한 물리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그래핀 내에선 전자가 큰 저항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전자 이동도를 가진다. 지금 컴퓨터 트랜지스터 물질로 사용되는 실리콘 반도체의 전자 이동도보다 200배 빠르고, 현존하는 물질로는 전자 이동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인디움비소보다도 7배나 빠르다. 따라서 그래핀을 사용하면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초고속 전자 소자를 상온에서 만들 수 있고, 이로 인해 초고속 컴퓨터를 실현하는 새로운 기술의 지평이 열리게 된다.

그래핀 연구 분야에서 우리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업적를 내며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매우 뿌듯한 일이다. 컬럼비아대의 김필립 교수팀은 그래핀 전자물성 연구에 있어 지속적으로 앞서가는 업적을 내고 있고, 성균관대 홍병희 교수팀은 올해 그래핀 대량 제작 방법을 네이처지에 발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주도해 열어갈 그래핀에 의한 새로운 과학기술 세상을 기대해본다.

신성철 KAIST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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