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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그들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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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불려나온다. 일가의 비리에 자신이 관여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언제 알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정도의 절차여서 사실상 사법처리 통과의례다. 그의 표현을 빌려 쓰면 이미 쪽이 다 팔렸고 패가망신했다. 딱하고 참담하다.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법리공방은 그래서 공허해 보인다.

얼마 전 홈페이지를 폐쇄하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도덕도 민주주의도 정의도 말할 자격을 잃었다. 나를 버려 달라”고 했던 그다. 경계심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꼼수 따위로 명예를 되찾기는 어려워졌다. 친족, 후원자를 포함해 패밀리가 줄줄이 구속되고 조사받았으며, 소환을 앞둔 측근들이 아직 남았다. 이쯤 만신창이가 되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대학교수의 훈수는 더 슬프다. 총무비서관이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해 청와대 공금을 횡령해 모아둔 것을 그는 이렇게 봤다. “대통령이 얼마나 가난하고 청렴했으면 안타까워 그랬겠느냐. 생계형 범죄를 전두환·노태우씨의 조직 범죄와 동일시하는 보도는 상식에 어긋난다.”

신념이면 어쩔 수 없지만 이 무슨 해괴한 이론인가. 국민 모독이자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을 더 욕뵈는 행위다. 심성이 고약하게 꼬이지 않은 사람한테서는 쉽게 나올 말이 아니다. 노 패밀리 몰락은 속된 말로 호박씨를 너무 깠기 때문이다. 그 교수는 홍보수석 때 “대통령은 21세기에 계시는데 국민은 독재시대 지도자 문화에 빠져 있다”고 했던 인물이다.

“완장차고 한참 잘 나가더니 義人 옷 걸치고 노무현 비판에 나선 상습 기회주의자”

노무현 정권에서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고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분은 비슷한 시기에 ‘봉하대’를 방문한 뒤 “인간적 위로를 하고 사는 이야기 좀 했다”고 말했다. 그걸로 끝냈으면 감동적이었을 텐데 그 가벼운 입이 색을 바랬다. ‘검찰 수사는 졸렬한 모욕주기 공작’ 따위의 비난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도덕성-신뢰와 원칙-특권과 반칙 타파로 이어진 노무현 통치철학은 나무랄 데 없었다. 관객들은 지금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진 위선과 기만적 작태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쿠데타적 사회변혁을 강행했음에도 사람들은 걱정 속에서 기대를 했다. 말은 헤펐지만 심지를 믿은 것이다.

이제 친노세력은 거의 자멸했다. 이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봉하에서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아쉬워서 그렇지 앞의 두 사람 말은 그래도 인간적 모범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름없는 노사모들의 변치 않는 충성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의리 없는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는 의리 있는 놈 원수 되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품에서 완장 한두 개씩 얻어 찼던 사람들의 배신은 그냥 버리기 아깝다. 호가호위했으면 ‘주군’에게 한번쯤 정중히 문안인사라도 드려야 했다. 대개 그들은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의인 옷을 걸치고 노무현 비판에 앞장선 상습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이것은 또다른 패악질이다. 청와대 고위간부, 국무총리, 장관을 지낸 분들부터라도 보은(報恩)에 나서면 세상은 한결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들 중에는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종부세’를 공모하며 세상을 조롱한 사람과 박정희·노무현 대통령을 고교교장·대학총장에 비유했던 사람도 있다. 노 정권의 황태자 호칭이 붙은 사람은 ‘386 노빠’ 등을 험담하더니 땅 짚고 헤엄칠 곳에 되돌아가 국회의원 재선거에 몰두해 있다. 그가 ‘허무개그’ 같은 선거운동을 잠시만 접고 노 전 대통령을 위로방문했더라면 사람 그릇 크기가 지금 것과 비교할 바이겠는가.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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