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타계 소식에 세상이 정지하는 듯”… 박경리 1주기 추모집 출간

“타계 소식에 세상이 정지하는 듯”… 박경리 1주기 추모집 출간 기사의 사진

"문학에 말뚝을 박고 늑대도 있고 하이에나도 있는 삶을 견디며 박토를 갈아 온갖 인간이 살고 죽는 '토지'를 일구고 그밖에 숱한 작품을 거두어들였습니다."(소설가 최일남)

5일로 1주기인 고 박경리 선생을 기리는 추모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토지문화재단)는 한 문학적 거인의 타계 이후 신문과 잡지에 발표되었던 지인, 후배들의 추모문을 망라한 진혼의 문집이다. 한국문학계의 어머니와 다름없던 고인에 대한 애도의 글은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까지 담고 있어 생전의 고상한 인품을 더욱 우러르게 한다. "1974년의 역시 봄철 즈음이었다. 내가 아침에 정릉의 박 선생 댁으로 가서 그날치의 (원고를) 받아와야 할 경우가 많았다. 가서 보면 박 선생은 거실에서 포대기로 손자 원보를 업고 원고를 쓰거나 챙기시곤 하는데 눈은 원고지로 향하면서 연신 풀어놓는 말씀들의 날 선 목소리에는 진한 안타까움과 끓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문학평론가 김병익)

사위 김지하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당시 박경리의 전전긍긍은 더욱 간곡하고 애절했다. 그런가하면 강원도 원주 회촌 골짜기에 창작실을 마련, 후배 문인들을 재우고 먹이며 글을 짓도록 도운 고인의 품은 막 낳은 알을 깃털에 감싼 채 부화를 염원하는 한 마리 암탉의 모정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모이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새의 심정은 그 시절 창작실을 거쳐간 숱한 문인들에 의해 생생하게 회고된다. "사랑하는 후배에게 어떻게든 무공해 채소와 집 밥을 먹이고 싶어하신 모성애를 못 이겨 아예 하숙비 없는 하숙집을 차리셨습니다. 외딸인 줄 알았다가 졸지에 여러 동생을 보게 된 저는 한때는 속으로 은근히 삐치기도 했지요."(소설가 박완서)

이밖에도 타계 소식을 접하고 "부산히도 움직이는 이 세상이 한순간 정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쌉니다"라고 쓴 소설가 신경숙을 비롯, 공지영 공선옥 윤성희 등 후배 문인들의 애끊는 추도사는 신록의 계절에 떠난 고인 앞에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한다. 아울러 5∼24일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특별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고인의 동명의 유고시집에 수록된 시를 주제로 중견화가 김덕용의 붓끝으로 되살려낸 그림들이 전시된다. 전시장에서는 고인의 유품인 재봉틀, 옷, 국어사전 등이 공개되고 생생한 육성의 영상도 상영된다.

정철훈 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