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창작집 ‘늑대’ 낸 소설가 전성태

세번째 창작집 ‘늑대’ 낸 소설가 전성태 기사의 사진

“늑대가 양을 먹는다고 어찌 책하랴”

집은 천안이요, 집필실은 안성이다. 올봄 집필실을 안성으로 옮겨오기 전, 지난해 겨울을 꼬박 보령에서 났으니 그에게 집은 지붕을 얹을 수 없는 글이요, 글쓰기가 그의 집이다. 길 없는 길을 따라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소설가 전성태(40) 이야기다.

최근 출간된 세번째 창작집 '늑대'(창비)엔 2005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낸 몽골에 체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뽑아낸 6편의 단편을 비롯, 모두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몽고는 그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특별한 공간이다. 툭 트인 초원에 밤이 내리면 쟁반만한 별들이 머리 위에서 윙윙 소리를 내는 곳. 하늘에도 땅에도 존재의 시원을 가르칠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문자들이 툭툭 불거져 있는 곳. 그곳에서 소설은 그에게 별빛처럼 스며들어왔다. 창작집을 펴낸 소회를 물었는데 그는 은근슬쩍 딴청이다. "올 2월, 보령 배재산을 넘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 이문구(1941∼2003) 선생이 마지막까지 머물다간 작업실이 있더군요. 지붕 낮은 조립식 주택이었는데 전기요금 고지서 석 장이 겨울비에 젖은 채 마당 웅덩이에 떠 있었지요. 어찌나 쓸쓸하던지, 그 쓸쓸함을 간직하듯 고지서 한 장을 건져내 가져왔어요. 인근에 이름도 아름다운 청나저수지가 있는데 한때 작가 김성동과 김종광이 청나면에 머물고 있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더군요."

이렇듯 흙가슴처럼 선한 작가 전성태는 어떤 연유로 몽골에 체류했을까. "지금의 나와 세상을 밀착시켜 그 내면을 다룬 것이 4년전 펴낸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소설의 결말은 고민만 하고 흔들렸던 것 같아요. 몽골에서는 이야기의 구도가 잘 잡히고 좀더 선명하게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요. 몽골의 초원에서 오히려 한국사회와 나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보았다고나 할까요."

흔히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안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이번 창작집엔 안과 밖이 조화롭게 섞여 적절한 삼투압을 지탱하는 수작(秀作)이 여러 편이다. 그리고 마음의 안과 밖에서 컹컹 울부짖는 검은 울음의 절묘한 비유가 소설 '늑대'를 낳았음은 자명하다. 표제작 '늑대'는 몽골 초원까지 흘러든 자본주의와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과 초원의 삶을 서로 조응시킬 뿐 아니라 사색적이고 미학적인 문체 역시 소설의 주제와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망가진 그 영혼이 왠지 빛나 보입니다. 그에게 그런 매력을 준 게 무엇일까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의 초원으로 서류 한 장과 함께 들어온 그 자본주의일까요? 나는 어렴풋이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데서 놓여난 여유이겠고, 옛날식으로 말하면 잉여물을 독점한 자가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퇴폐성이겠지요."(40쪽)

도시에서 유명한 서커스단을 이끌고 있는 늙은 한국인 사업가를 겔르에 들인 몽골 촌장을 1인칭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검은 욕망에 물든 늙은 사업가가 늑대 사냥을 나서는 행위와 마음 속 검은 늑대를 잡으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천문(天文)을 읽는 1인칭 화자의 마음 빛깔이 서로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도저한 문체로 그려낸다. 늑대는 '그 큰 입을 가진 축생'에 비유되지만 그 입은 사람의 입이자 자본주의의 입이며 욕망의 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입은 가련하다. "양도 가련하고 늑대도 가련하다. 양은 늑대에게 먹히는 데 이것은 가련한 일이다. 늑대가 배고픈 것도 가련한 일이다. 하여 늑대가 양을 먹는다고 어떻게 책할 것인가? 생과 더불어 죄과를 늘리고 있지 않은가? 죄업의 끝을 몸으로 설하도록 만들어진 축생이다. 그보다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는가? 가련하도다."(43쪽)

자기 안의 늑대를 불러 세운 채 마주하며 으르릉거리고 있는 축생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설파는 퇴폐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전성태 문학을 여기에 이르게한 몽골 초원의 신비가 못내 궁금하다.

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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