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숨막히는 외교전―섬뜩한 음모…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상·하) ’

[책과 길] 숨막히는 외교전―섬뜩한 음모…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상·하) ’ 기사의 사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상·하/존 줄리어스 노리치/뿌리와이파리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지중해는 유럽 세계의 중심이었다. 지중해는 지구상의 6대륙 가운데 3대륙을 이어주고 있으며, 연중 내내 쾌적한 기후조건을 지녀 고대의 찬란한 문명 3개를 살찌우고 세계 3대 종교를 탄생시키거나 꽃피우는 무대가 됐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5000년 동안 지중해를 무대로 펼쳐진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영국의 역사가 겸 여행작가인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틱한 사건, 다채로운 인간, 잊혀진 제국 등을 문명사적인 관점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중해를 넘나들며 전개된 유혈 낭자한 전쟁, 숨 막히는 외교전, 섬뜩한 음모, 수지 맞는 장사, 찬란한 예술의 세계 등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각기 500쪽이 넘는 두 권의 책은 "지중해는 기적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중해가 육지로 빙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체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지브롤터 해협 덕분이었다. 고대에는 헤라클레스 기둥으로 불린 그 해협이 있었기에 지중해는 대서양의 거센 풍랑을 비껴갈 수 있었고 적어도 최근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자가 지중해 역사의 출발점을 이집트 문명으로 삼은 것은 이후 크레타, 미케네, 트로이 전쟁을 통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는 문명사를 풀어가기에 적합하기 때문이고, 1차 대전을 종결시점으로 삼은 것은 이후 유럽의 제국 가운데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등 3개 제국이 무너지면서 서구세계의 질서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중해는 알파벳의 발생지였다. "지중해 동부의 레반트에 본거지를 둔 페니키아가 후대에 남긴 가장 귀중한 자산은 교역술도 아니고 항해술도 아닌 알파벳이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우수한 점은 있었지만 기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음으로 구성된 페니키아 알파벳은 그리스인들이 적절히 변형시켰고 현재 알파벳의 시조가 된 것이다."

지중해는 여러 국가가 인접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약탈과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은 태초부터 같은 인간을 먹이로 삼아 왔다. 또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이 건조된 이래 지중해에는 언제나 해적이 존재했다. 중세 이후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모두 전쟁을 구실로 삼든 삼지 않든 때로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해적행위를 일삼았다."

유려한 글솜씨와 역사적 안목을 바탕으로 지중해 문명의 흥망성쇠를 들려주는 저자는 교양있는 지식인, 뛰어난 웅변가였던 로마의 카이사르는 유능하고 매혹적이었으나 신뢰감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말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 수도를 성모 마리아께 봉헌한 이후 1123년간 지속한 비잔티움 제국은 본질적으로 로마 제국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서술한다.

에스파냐의 두 군주 페르난도와 이사벨이 그라나다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대거 추방해 서유럽 인구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훗날 지중해를 역사의 주역에서 조역으로 밀려나게 한 콜럼버스 항해에 자금을 대줬다는 대목이 이채롭다. 나폴레옹의 진격에 허망하게 무너진 베네치아의 비극은 멸망이 아닌 멸망한 방식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기원전 6세기에 번영을 누렸던 리비아 동부의 키레나이카, 로마의 속주를 거쳐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됐던 알제리, 19세기까지 토착민의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문명도 지중해 5000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속에 다양한 화보 80컷과 왕가의 가계도, 당시 지도 등을 곁들였다.

제33장 '파리평화회의'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저자는 "무엇보다 비통한 것은 지중해 본연의 위엄을 상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람과 무덤, 협력과 장벽, 행복과 파멸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든 지중해가 놀이터로 변질되고 옛 항구가 요트 정박지로 쓰이는 현실이 슬프다는 것이다. 찬란했던 문명지가 관광지로 변해 몸살을 앓는 곳이 어디 지중해뿐이랴.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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