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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사촌이 땅 샀을 때


철수 엄마가 민수 엄마에게 아들 자랑을 한다. "아 글쎄, 우리 철수가 이번에 1등을 했더라고요." 그러자 민수 엄마 왈. "그러세요? 우리 민수는 1등 하기 틀렸나 봐요. 커닝을 할 줄 모르거든요." 민수 엄마의 말에 심통이 배어 있다. 철수 엄마가 좀 떠벌린 면도 있다.

말이나 글에서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자제해야 할 때가 있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은 격정이 담기지 않으면 글의 효과가 떨어진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과격하게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부담으로 돌아갔다.

감정을 들키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베갯머리에서 '검은돈으로 샀겠지'라고 중얼거렸어도, 훗날 부부싸움 때는 그것이 '좁쌀 남편'의 빌미가 된다. 좀 배가 아프더라도 "그래, 잘됐군" 정도로 넘어가야 밴댕이 속이 되지 않는다.

본인의 이해득실과 연관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말을 아껴야 한다. 방귀 뀐 대통령에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부의 혐의가 있고, 타지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이 그곳에 뼈를 묻겠다고 하면 권력욕이 빚은 허풍이란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뜻밖의 실언으로 크게 곤욕을 치렀다. 국회 외교통상위 회의장에 불청객으로 들어온 다른 상임위 소속의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보고 옆사람에게 투덜거렸다. "왜 들어와 있어. 미친 X." 이게 밖으로 새나가는 바람에 혼쭐이 났고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못 듣는 곳에서 한 욕설을 트집잡아 물고 늘어지는 것도 점잖치는 못한 것같다. 정치판의 상궤에도 어긋날 것이다. 그래선지 욕먹은 천 의원의 반응이 너그럽다. "뭐라고, 미친 X라고?" 하며 역정을 냈다면 서로 오십보 백보였을 터인데, 의외로 호방하다.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문제삼고 싶지 않다."

이게 곧 말로 이기는 법이다. 정치판이 다 이러면 아옹다옹할 일이 없을 텐데, 흙탕물에 연꽃 필 날이 언제 오려는지.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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