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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정세균 vs 정동영 Ⅱ

[백화종 칼럼] 정세균 vs 정동영 Ⅱ 기사의 사진

T S 엘리엇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계절'이라고 노래한 4월. 그 4월에 '황무지'인 줄만 알았던 민주당에도 꽃이 피었다. 4·29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 다섯 곳 중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여당과 제1야당이 정면 승부한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악조건 속에서도 승리한 것이다.

경기도에서 재기를 노리는 한 전직 야당 의원은 얼마 전 "현 정권이 이대로만 가 주면 이번 재선거는 물론이고 다음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민주당에 승산이 있다"고 호언했다. 기자는 듣기만 했으나 속으론 "한나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민주당의 지지율로 승산이라니? 저렇게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민심을 읽으니까 정치를 포기하지 않나 보다"며 웃었다. 그런데 몇 달 뒤 민심의 척도라는 수도권 부평을 선거에서 그의 말이 현실이 됐으니 기자는 책상물림의 한계를 다시 드러내고 만 셈이다.

황무지에서 꽃 피운 민주당

민주당과 정세균 대표는 재·보선에서 영패한 한나라당을 내려다보며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다음 지방선거와 총선의 승리, 나아가서는 정권 탈환의 꿈까지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일몽만은 아닐 터이다. 15대, 16대 대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 노무현씨가 정권을 잡으리라고 내다본 사람이 얼마나 됐었는가. 상당 기간 진보 성향의 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당장의 대체적인 분위기지만 누구 말대로 "현 정권이 이대로만 가 주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정 대표가 이번 선거를 자축하며 대권에의 꿈을 키우기엔 눈앞에 장애물들이 너무 많다. 그 꿈은 정세균 대표와 주류만 꾸고 있는 게 아니다. 배신자의 오명을 불사하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원내에 재입성한 정동영 의원과 오랜 칩거를 깨고 정세균 대표와 함께 선거운동을 도운 손학규 전 대표도 승리감을 만끽하며 꾸는 꿈인 것이다. 그것이 그렇지 않아도 낮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더욱 쪼갤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다.

겨울보다 잔인한 봄 될 수도

정세균 대표와 당 주류는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한 정동영의 공천 배제가 옳았음이 입증됐다며 자신들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정동영 복당의 장벽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동영 의원은 무소속으로 연대한 신건 후보까지 역전 압승케 함으로써 고향에서의 지지기반을 다시 한번 과시했으며 이를 무기로 복당 공성(攻城)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뜻이 끝내 이뤄지지 않으면 독자세력화 즉 창당까지도 검토할 것이다. 만일 일이 그에 이르면 호남, 적어도 전북에서의 그의 지지기반으로 볼 때 민주당은 지지층의 분열로 전국정당화는 고사하고 제1야당으로서도 적잖이 어려운 지경에 빠질 우려가 있다. 물론 그 경우 정동영 의원도 설령 전북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세력을 확보한다 해도 지역의 울타리에 갇혀 지도자의 위치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손학규 전 대표도 부처님을 위해 시주한 건 아닐 것이고 언젠가는 그들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엘리엇은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깨우는 그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며 눈 덮인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노라고 읊었다. 야권의 지도자들에게도 오히려 싹이 보이지 않던 지난 겨울이 더 따뜻했고 희미하나마 싹이 보이는 지금부터가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뒤에서 참새가 노리는지도 모르고 매미를 잡는 데만 정신이 빠져 있다는 사마귀(螳螂捕蟬)의 고사를 그들도 알고 있을 터이다.

전무이사 大記者 hrefmailto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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