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성기철] ‘박근혜 정치학’과 이명박 기사의 사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두어 번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악수를 해 보면 깊숙이 잡거나 흔들기에 민망할 정도로 손에 힘이 없다. 몸매는 바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냘프기만 하다.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다. 보통의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강인한 외양은 어디에도 없다.

박근혜의 정치적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절제(節制)된 언행'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지만 결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할 말만 골라서 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개인적 약점에 속하는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낀다. 농담도 잘 하지 않는다. 정제된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만의 독특한 힘이 느껴진다.

그런 모습은 평소에도 쉬 발견할 수 있다. '참 나쁜 대통령'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다' 식의 표어성 언사가 그것이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행동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절제돼 있다. 타이밍상 나설 때다 싶은데도 좀처럼 발을 내딛지 않는다. 때론 무책임하단 소릴 듣기도 하지만 손익계산을 해 보면 나서지 않는 게 도움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정치 입문 이후 이런 절제된 언행으로 파워를 키워온 박 전 대표가 지난 4·29 재보선에선 아예 '침묵'을 선택했다. 선거 지원유세에 전혀 나서지 않은 것이다. 친이 중심으로 공천을 한 당 지도부로선 체면상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형국이었다. 결과는 경주에서의 친박 무소속 후보 당선으로 그의 위력이 재확인됐다. 인천 부평을과 울산북의 경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했다면 한나라당 후보를 충분히 당선시킬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올 법도 하다.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0대 5로 완패한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스타일과 한나라당내 친이-친박 갈등에서 찾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 대통령이 겸허하게 국정을 쇄신해야겠지만 동시에 친이-친박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남은 임기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선거였다. 재보선을 계기로 박 전 대표의 당내 파워는 더욱 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이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의 힘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국정 장악력 확보를 위해 직계세력 중심으로 팀을 짜야 한다는 것은 정권 초기에나 먹힐 법한 논리다. 한 지붕 두 가족으로는 여권이 초식공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대통령에게 박 전 대표는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다. 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멀리하면 할수록 그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를 배척했다가 당장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를 셈인가.

앞 길이 뻔한데도 청와대 비서실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재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반을 적극적으로 타개하기보다는 '재보선은 재보선일 뿐'이라며 선거 의미를 축소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오는 6일 이 대통령이 박희태 대표와 회동하는 계획을 잡아놓았지만 박 전 대표를 포용하는 묘책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엄연한 정치 실체다. 이 시점에서 박 전 대표를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통령 한 사람밖에 없다. 두 사람의 화해·협력이 나라 경제를 하루빨리 안정시키고, 국민 다수를 편안하게 해줄 것 같기에 이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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