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너머] 3부 新남촌,강남―성장의 속도 ⑥ 테헤란로,인문학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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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에서 몇 개의 한강다리와 터널을 지나 강남으로 간다. 강남시대를 연 첫번째 주자 한남대교(제3한강교)를 넘어서면 첫 관문인 강남대로가 펼쳐진다. 오래전 경기도 광주 봉은사에 갈 때 나룻배에 올라 누군가 노를 저어 강물을 건너던 그림 같은 기억은 지나갔다. 지금은 지하철과 자동차에 실려 무표정한 얼굴로 한강을 넘고 강남에 진입한다.

강남역부터 삼성역까지 동서로 이어진 3.7㎞ 구간의 테헤란로가 여기서 시작된다.

한국은 무엇으로 사나 그 길에서 묻는다

조선 성종과 중종, 정현왕후의 능이 있어 삼릉로라고 불리던 길은 1977년 석유파동 때 이란의 도움을 받고 서울시가 테헤란시와 결연하면서 테헤란로로 바뀌었다. 대신 테헤란에는 서울공원이 들어섰다. 폭 40m의 테헤란로는 그 당시 무역회관 건물 말고는 밭뙈기와 집들이 늘어선 벌판이었다가 급격히 고층빌딩 거리로 탈바꿈했다.



강남역 부근은 빌딩들 사이에 독립적인 소규모 상점들이 나란히 존재하는데, 여기가 젊은이들에게 지금 얼마나 호응을 받는 장소인지는 강남역 6, 7번 출구 쪽 거리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주차장 없는 그저 그런 빌딩에 젊은이 상대의 온갖 의류, 액세서리 매장, 핸드폰, 어학원, 음식점, 카페, 노점상 이런 것들이 뒤섞여 자리한다. 연말 크리스마스 같은 흥겨운 날 무렵이면 지하철 출구서부터 인파로 막혀 '무슨 일인가' 할 정도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 지역 땅값은 강북 명동만큼 비싸다.

강남의 젊은 구역이란 데 끌려 서로를 보기 위해 모이는 이곳 해방구에서 10대와 20대가 보면 강북은 고답적인 곳, 원천이고 자존심일 뿐이다. 여기서는 역발상의 감각이 만들어진다. 인근 수도권에서 접근하는 버스노선은 아예 강북으로 넘어가지 않고 이곳 강남을 종점으로 한다.

한동안 강남취향의 젊은이들을 오렌지족이라고 불렀지만 이젠 케케묵은 고물 같은 개념일 뿐, 아무도 그런 과시적인 언어를 쓰지도 않는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러 신세대의 등장이 새로울 것도 없어진 것이다. 이곳을 지나쳐 테헤란로로 방향을 잡으면, 그때부터 의미가 달라진다. 강남의 제2시대라 할까, 20층 전후부터 40층을 넘는 건물들이 4개의 지하철 역을 끼고 쾌적한 길 양쪽에 철벽처럼 펼쳐진다. 대부분 97년 IMF를 겪고 난 이후 들어선 건물로 여기엔 강남건설을 위해 강북을 희생시키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달려온 한국근대사, 경제의 역사가 점철돼 있다. 구릉지가 약간씩 돋아있지만 이 언덕들은 무의미하다.

"이 지역만큼 상전벽해가 될 부동산 호재는 이제 다시 없을 것"이라고 증권사의 한 부동산전문가는 단언했다. 지금 강북 용산이 국제업무지구로 개발된다고 떠들썩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업비와 인프라가 투자된 곳이 테헤란로였다.

"테헤란로에서 전면 도로변에 면한 건물은 고층 저층 다 합해서 215∼230개가 된다"고 공인중개사 윤성열씨가 말했다. 테헤란로의 모든 지번과 건물위치를 표시한 3m 길이 두루마리 자료에서 찾아낸 숫자이다.

이 길에서 보는 주요건물은 테헤란로의 서쪽 기점을 차지한 강남역 부근에 삼성본사 포스틸 한솔타워 등이 있고 역삼역 부근에 강남파이낸스센터 지에스타워 데이콤 타라 한국지식센터 한국기술센터 큰길타워 금강빌딩 두꺼비빌딩 등이 있다. 선릉역에는 샹제리제빌딩 정도가 눈에 띄다가 삼성역 쪽으로 가면서 섬유산업연합회 유니온스틸타워 동부금융센터 포스코빌딩 현대백화점 엔씨소프트 유한킴벌리 KTF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이 줄줄이 나온다. 오라클, 야후 등도 보이고 은행과 저축은행들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는 밤 문화도 요란하게 피어나고 복잡한 켯속의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처음 테헤란로에 입주한 것은 정보통신(IT)관련 업체들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IMF를 극복할 대체산업으로 IT업종을 적극 지원했는데 59세 나이에 IT사업을 시작한 미래산업의 정문술씨나 폭발적 성공을 거둔 메디슨의료벤처의 이민화씨 같은 인물은 IT사업의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표상이었다.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IT업종은 이곳에서 집체화된다. 이 IT업종은 98년부터 2003년 사이 이곳에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다수는 구로디지털단지, 포이단지, 영등포, 분당 등으로 이주해 나갔다. 그 빈자리엔 제2금융권이 대거 자리했다.

테헤란로의 건물은 100평에서 1000평에 이르는 필지 모두가 민간 개인 소유로 서로 경쟁하면서 들어선 것들이라 아기자기하면서 주인도 자주 바뀌고 이름도 달라지곤 한다.

건축은 진화되고 있다. 고강도 콘크리트로 기둥 단면이 줄어들고 돌보다는 덜 무겁고 디자인이 수월한 유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층건물일수록 기계비중이 높아지고 바람의 미는 힘 때문에 창문은 최소한만 열릴 뿐 거의 밀폐된다.

국내 건설사가 최근 새로 받아들인 기술은 LG아트센터를 지을 때 옆에 지나가는 지하철 소음이 공연장에 미치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었다고 엄이건축의 서상하 부회장이 말했다.

테헤란로의 주인공은 30대가 주축이 된 샐러리맨과 CEO들이다. 이들은 국제경쟁력을 생각하는 업무지구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200여개 건물에서 일하는 이들 인구와 도로 뒷면 음식점 등 저층 건물의 서비스 구역이 서로 유기체가 되어 테헤란로의 활발한 일상을 일궈나간다.

삼성역의 북쪽은 이 거리의 주축인 54층 무역센터를 위시해 정부주도 국유의 분위기가 강한 건물군의 집합체이다. 한전, 아셈회의장, 아셈타워, 도심공항터미널 등 테헤란로보다 더 규모가 방대한 건물군은 모두 지하에서 한통속으로 연결되는 지하도시이기도 하다. 이들이 테헤란로와 연결되고 서쪽으로 확장돼 법조단지까지 지하철2호선이 지나면서 그 유동인구는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이제 모든 것이 자꾸 대형화, 집체화 되면서 작은 개인상점 같은 것은 옛이야기가 되어 아우성도 치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는 중이다. 일괄 유통구조를 갖춘 건물 하나가 들어서면 주변을 블랙홀처럼 흡수해 전통적 중심축이 이동할 수 밖에 없다"고 윤성열씨가 말했다. 5년쯤 전 일본의 경제인한테서 서울거리엔 도쿄에 없는 소형 개인 상점들이 많아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똑같은 말을 이번엔 테헤란로에서 들은 것이다.

김유경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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