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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로 글바로] 동가식서가숙


결혼을 앞둔 처녀에게 두 군데서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 동네 총각은 부자인데 못생겼고, 서쪽 동네 총각은 가난한데 잘생겼다. 부모가 누구를 택할 것인지 묻자 처녀가 고민 끝에 대답한다.

"저는 밥은 동쪽에서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고 싶어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단다. 욕심이 과하다는 속뜻이 담겼다. 요즘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닐 때, 혹은 정치 철새를 손가락질할 때 이 말을 쓴다. 그런데 말법 측면에서 처녀의 대답을 되새겨 보자. 여기서 '저는'은 없는 게 훨씬 낫다.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가 때로는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처럼 생략하는 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주어가 없으면 가끔 엉뚱한 것이 주어 행세를 하려고 한다. 이때는 자칫 글이 꼬이기 쉽다. 처녀와 부모 사이에 오갔을 만한 대화를 좀 더 엮어 보자.

"한 사람만 골라라. 서쪽 사람한테 시집갈래?" "재산이 없잖아요."

처녀의 답변에서 주어는 '재산'일까. 아니다. 이 답변은 "그 사람은 재산이 없잖아요"를 줄인 것이다. 따라서 주어는 '그 사람'이다. '재산'은 보어이다.

"그럼 동쪽 사람은 어떠니?" "그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처녀의 이 대답에도 주어가 감춰져 있다. '그 사람'을 주어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이 표현은 "나는 그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어요"를 줄인 것이다. 술어가 '쳐다보기도 싫다'니까 그에 맞춘 주어는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목적어이다. 이어지는 부모의 핀잔.

"너는 욕심이 많아서 ( ) 시집을 못 보내겠다."

이 말에서도 주어는 '너'가 아니다. '시집을 못 보낸다'가 전체 술어이므로 그에 맞는 주어는 '우리는' 정도가 돼야 한다. 한데, 생략된 주어 '우리는'을 괄호 속에 넣고 다시 읽어 보자. '너는 ∼우리는'의 흐름이 매우 어색하다. 주술 관계의 호응도가 약한 것이다. "너는 욕심이 많아서 시집을 못 갈 것 같다"로 하든가 "(우리는) 네가 그렇게 욕심이 많으면 시집을 보낼 수 없다"로 하면 자연스럽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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