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석동칼럼

[한석동 칼럼] 아름답게 떠나는 희망 전도자

[한석동 칼럼] 아름답게 떠나는 희망 전도자 기사의 사진

1971년 1월, 서울사대부고 3학년 장영희(19)양의 아버지가 서강대를 찾아갔다. 영어영문학과장이던 미국인 신부 제롬 E 브루닉 교수(80년 작고)에게 그는 "딸이 입학시험을 좀 보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브루닉 교수는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그리고 "입학시험은 다리가 아닌 머리로 치른다"며 응시를 흔쾌히 허락했다. 영문학 교수, 수필가, 번역가로서 장영희의 기적 같은 삶은 그렇게 새로 시작됐다.

7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입학시험에서 장애인이 불합격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장애인은 제아무리 시험을 잘 쳐도 신체검사에서 떨어질 것이 뻔해 응시 자체를 포기했을 정도로 사회의식은 척박했다. 장영희의 아버지는 입학원서를 내기도 전에 서울의 대학들을 찾아다니며 딸이 입학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통사정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래서 장영희 교수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서강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서강대가 없었으면 대학을 못 다녔을 거라고도 말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85년 영문학과 강사로 모교에 돌아온 장영희는 브루닉과 서강대를 평생 은인으로 여겼다. 치열했던 삶만큼이나 열정적인 강의, 모교를 위한 헌신, 깐깐했지만 남달랐던 제자 사랑은 보은의 일부였다.

“장영희는 결코 희망을 너무 크게 갖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잘 살았다”

그의 '희망 메신저' 소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장영희는 한국 영문학계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아버지 장왕록(94년 작고) 박사가 서울사대 교수였기에 선천성 1급 지체장애 처지에서 간신히 서울사대부속중·고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증 지체장애가 그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게 만들어 일찍 언어감각을 터득했던 것으로 역설이 되어 전해오기도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장 교수도 이를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희망이 가장 큰 행복임을 줄기차게 전파했다.

"길고 가늘게 사느니 굵고 짧게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데 화끈하고 굵게, 그렇지만 짧게 살다가느니 보통밖에 안 되게,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살아도 오래 살고 싶다."(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

2001년 유방암 수술 후 8년 동안 전이-수술-항암치료가 처절하게 반복됐지만 불같이 일어섰던 그다. 그러나 그도 한번의 죽음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누구든 예외일 수 없지만 57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 애석하다. 평균수명만큼은 살고 싶어했던 것과의 차이만 20년 더 된다.

석달 전, 장영희는 곧 다가올 운명을 예감했다. 의지만으로 암세포와 항암치료를 더는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장애와 암투병, 그 숱한 역경을 모두의 승리로 극복해냈던 그는 죽음 후 해야 할 일들을 그 무렵부터 하나씩 정돈해나갔다. 제자들에게는 조사(弔辭)를 누가 읽고 운구는 누구누구가 하라고 당부했다.

그의 아름다운 영혼을 담았던, 고단한 육신은 오늘 먼 길을 떠난다. 죽어 슬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만 이제 그를 배웅할 시간이 됐다. 조심스러워했지만 그는 희망을 너무 크게 갖지 않았을 뿐더러 '정말 잘 살고 간다'는 데에 아니라고 할 사람도 없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고 높다(이사야 5:8∼9). 하나님은 희망 전도자 장영희 교수를 천국에서 중용하기 위해, 땅에서도 지금까지와 다른 방법으로 더 거룩하게 쓰려고 일찍 불렀을 것이다. 말년에 그가 염원했던 새로운 기적은 하나님 뜻대로 이뤄질 것이다.

한석동(편집인) jerome7@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