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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고급 사우나는 요인들의 사교장이다. 먼저 사우나 부속 식당에서 보드카를 두세 잔 들이키고서 사우나에 들어간다. 사우나 중에는 자작나무 가지로 상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준다.

사우나에서 나와 냉탕에서 몸을 식힌 후 또 보드카를 두세 잔 들이키는데 훈제 용상어, 햄 , 살라미 소시지, 오이, 절인 마늘 등이 안주로 나온다. 술은 혼자서 홀짝이면 안 되고 무엇이건 건배 구호를 붙여서 다같이 한입에 털어 넣는다. 그래야 우정이 깊어진 걸로 간주한다. 사우나를 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술이 빨리 취하지만 알코올도 바로 몸밖으로 빠져나가므로 음주량이 늘어난다. 사우나 파티는 보통 5∼6시간 계속되는데 그동안 한 사람이 보드카 서너 병을 마시게 된다.

러시아 정치인들은 술 마시지 않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술 마셨을 때와 평소의 발언, 태도를 비교 관찰한 뒤에야 인물을 평가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방문, 대통령 별장 다차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사우나 회동을 했다. 옛 소련의 연방국이었던 카자흐는 러시아 전통을 물려받아 손님에 대한 신뢰를 사우나 교류로 과시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방문 때는 다차에서 보드카와 맥주만 마셨다.

소련 해체를 전후해서 모스크바에서 일본 외교관으로 근무한 사토 마사루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의 사우나 정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취기가 돌면 남자들끼리 입언저리에 키스를 한다. 세 번을 하는데 세 번째는 혀를 가볍게 상대 입 속에 넣는 게 친애의 정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좀 더 레벨이 높은 표시 방법도 있지만 우리 문화와 거리가 크므로 생략한다…. 기분이 좋아진 옐친이 스푼으로 술잔을 두드리며 애창곡 '우랄의 마가나무'를 부르면 머잖아 파티는 끝이다."

옐친 측근들은 이 자리에서 인사와 정책을 상의하는데 파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옐친은 측근의 견해를 존중한다. 사우나 파티가 있고 나서 며칠 후면 중요 인사와 정책이 발표된다. 옐친의 사우나 정치는 그가 1996년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끝났다. 하지만 그 전통은 이번 사우나 정상 회동에서 보듯 옛 소련권에서 여전한 모양이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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