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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상온] 아버지 노무현


어제 한 국내 신문 귀퉁이에 조그마한 기사가 실렸다. '가족과 함께한 즐거운 하루'를 주제로 실시된 청소년 미술작품 공모전에 4만여점의 초등생 그림이 접수됐으나 아버지가 등장하는 그림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나온 그림도 어머니보다 작게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설 자리를 잃은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하긴 새삼스럽지도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장(家長)으로서 권위를 잃었다. 가족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왕따'당하기 일쑤다.

이렇게 된 데는 아버지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지만 일에 매달려 가정에 소홀했다든지 시대상황에 떠밀려 전통적인 엄부자모(嚴父慈母) 대신 자부(慈父)로 역할변경을 함으로써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상실했다든지 등. 하지만 그보다는 여권(女權)신장과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나머지 가부장제(와 그 폐단)를 가혹하게 매도해온 진보적 추세가 더 큰 배경은 아닐지 모르겠다.

실제로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름(PC:politically correct)'을 추구하는 이들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를 놓고도 가부장제를 강조하는 만화라고 폄하할 정도였다. 스머프 마을의 해결사 파파 스머프가 남자 어른, 곧 가부장으로 비친다는 이유로.

이유야 어찌 됐건 그 같은 부권(父權) 상실, 혹은 아버지 상실의 세태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머니, 아들, 딸, 온 식구가 아버지 후원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는데 아버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뿐이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1억원짜리 회갑선물도 아내가 버렸다는 것만 나중에 들어서 알 뿐 어디 버렸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생업(정치)만 알지 집안일은 전혀 모른다는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은 다소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일단 그랬다고 치자. 아버지 노무현은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 혹은 왕따를 당했거나 '물 먹은' 셈이 된다.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다. 가부장과 마찬가지로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제가(齊家) 후 치국(治國)을 했더라면….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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