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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미디어법과 딱한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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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그리고 대기업의 방송 참여 허용 등을 주요 쟁점으로 하는 미디어 법안들에 대해 분명하게 찬·반을 밝힐 자신이 없다. 이를 허용하는 것이 언론시장의 빅뱅이 진행되는 뉴미디어 시대의 세계적 추세이고, 그래야 재력을 가진 매체들이 경쟁력 있는 콘텐츠(내용물)를 생산할 수 있으며, 많은 매체들이 생겨나 여론의 다양성도 확보된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반대로, 그리 되면 보수 성향의 거대 신문들과 거대 자본이 군소 매체들을 고사시키고 언론을 독점할 것이며, 권력과 언론과 자본이 유착하여 여론을 독점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게 민주당과 진보 세력의 주장이다.

합의서는 항복문서였다

기자가 판단에 자신이 없는 건 시대적 흐름을 볼 땐 정부·여당의 주장이 옳은 것 같은데, 우리의 현실을 볼 땐 야당이 제기하는 위험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소신 부족이라고 탓할지 모르나, 같은 메스라도 의사가 쓰느냐 소매치기가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이치와 같다고 변명하고 넘어가려 한다.

지난 2월 국회 폭력 사태까지 겪은 뒤 여야의 극적 타협으로 정상적 논의 절차에 들어간 이 미디어 법안들을 둘러싸고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여야는 지난 3월2일 이 법안들에 대해 "사회적 논의 기구에서 100일 간 논의한 뒤 6월 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출범했으나 당초의 예상대로 입장 차가 워낙 커 성과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이를 이유로 장외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민주당은 청와대의 법안 자진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이의 저지를 위해 결사 투쟁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민주당이 진보 세력들과 연대하여 장외 투쟁 방식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하거나, 논의에 대한 무성의를 이유로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등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야 불법적인 것만 아니라면 말릴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3월2일 합의 파기에 동의하지 않는 한, 6월 국회에서 표결 처리한다는 합의를 지켜야 한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재론의 여지가 없는 공리(公理)이며, 그 합의는 여당과의 약속을 넘어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기자가 지난 3월에도 이 난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3월2일의 합의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써준 사실상의 항복문서였다. 비록 논의 절차를 거치더라도, 표결하게 되면 정부·여당의 뜻대로 법안이 통과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항복문서였다는 것은 합의 직후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이로 인해 당이 파탄날 것"이라고 극언하는가 하면, 진보 단체들이 민주당과의 결별 운운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 항복문서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에 "결사 저지" 등 딴소리를 해봐야 스스로 신뢰만 추락시킬 뿐 공감을 얻기 어렵다. 민주당은 여론 수렴 과정이 충분치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충분'의 개념과 한계 자체가 애매하며, 어떤 경우에도 민주당이 만족할 수준의 '충분한 여론 수렴'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결사 저지"를 외치며 국회를 또 난장판으로 만들 채비를 하는 대신 이제라도 미디어 법안들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옳다. 또 만일 민주당의 반대 속에 그들의 표현대로 'MB악법'이 통과될 경우 국민이 정권을 심판해주도록 호소하는 게 민주적이고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일 것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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