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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손수호] 대나무의 수난


예나 지금이나 대나무의 인기는 높다. 대표적인 서상(瑞祥)식물로 칭송한다. 사시사철 '푸르다'는 이유 하나로 세한삼우, 사군자, 오우가에 포함된다. 배우 한석규는 대나무 숲속을 거닐면서 휴대전화를 잠시 꺼두라고 했다. 비록 광고이긴 했지만 담양죽림에서 찍은 대나무의 쭉쭉 뻗은 각선미는 일품이었다.

봄의 죽순은 일미다. 하루 1m까지 자란다고 하니 베는 시점이 고민이다. 여름의 죽부인은 남정네의 파트너로 사랑받는다. "내가 어깨와 다리를 안온하게 괴고 있으면/내 이불 속으로 정답게 들어오네." 이규보의 시다. 가을 초옥에서 들리는 피리소리가 그렇듯 겨울 바람에 서걱이는 댓잎 소리는 최상의 음악이다.

문학의 바통을 미술이 받는다. 사군자가 그게 그거 같지만 프로 화원들은 대나무 그림에 가산점을 준다. 월죽(月竹) 풍죽(風竹) 우죽(雨竹)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익히는 담묵과 농묵의 필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고아한 묵죽이 조선조 최고의 회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다.

고고한 선비의 상징이던 대나무가 잘리면 생활의 반려가 된다. 부채와 바구니, 돗자리가 그렇다. 장례식 때 상주의 지팡이로 사용되는 것은 대나무가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풍속에서 나왔다. 대밭의 뿌리는 왕성하게 뻗어 사방(砂防)의 구실을 했고, 대숲은 마을을 지키는 방풍림이었다.

대나무는 가벼우면서도 예리하게 깎을 수 있어 쉽게 무기로 변신했다. 그게 죽창이다. 쇠가 발견된 이후에도 제련술은 국가의 관리를 받았으므로 죽창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기세등등하던 시절,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이 나왔다. 흰옷 입은 농민들이 무리지어 죽창을 든 모습이다. 좌우 대립이 극심하던 해방공간에서는 사형(私刑)의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죽창이 다시 등장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이후 3년8개월 만이라고 한다. 지난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노총 시위에서다. 죽창이냐 죽봉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그게 대수인가. 거기서 물리력이 발생했고, 그것이 사람을 향했으면 흉기다. 병역의무를 수행하다 각막을 다친 전경이 불쌍하다. 대나무의 수난도 안쓰럽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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