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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조용래] 韓流 막걸리


도쿄의 게이오대학 앞 밥집 골목에는 쓰촨식 볶음면을 참 잘하는 중국집이 있다. 지난해 방문연구원으로 머무는 동안 가끔 들렀는데 언제나 줄을 서야 했다.

초여름 어느 날 점심 때였다. 그날도 20분쯤 기다려 겨우 자리를 차지했는데 옆자리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에 눈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여성 넷이 와인잔에 담긴 우윳빛 액체로 건배를 한다. 점심을 겸해 생일잔치를 벌이는 듯. 알고 보니 그 액체는 한국산 막걸리다. 테이블 위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플라스틱 막걸리통과 와인잔이 우습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하긴 막걸리를 영어로 풀면 'raw rice wine'이니 와인잔에 마신들 무슨 상관이겠나. 일본 TV광고에 막걸리가 등장하고 지하철 전동차 안에도 막걸리 광고가 나붙는 상황이니 여성들이 맛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이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에 막걸리 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韓流)가 점점 시들어가는가 싶었는데 이젠 막걸리가 그 바통을 잇는다. 한류 붐이 일본인, 특히 일본 여성들의 한국 관광을 유도하더니 그 여세로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드라마라는 가공의 세계가 현실로 뿌리내리는 기묘한 조화가 한류라는 문화의 힘이다.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442만달러로 전년보다 51.9% 늘고, 그 가운데 89.6%가 일본에서 소비됐다. 바로 한류 막걸리의 위세다.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도부로쿠' '니고리자케' 등이 있지만 한류 붐을 탄 막걸리와는 경쟁이 못 됐다. 그 배경엔 막걸리의 질적 진화도 무시할 수 없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야 했다. 1963∼77년엔 쌀 소비 억제 차원에서 쌀막걸리 주조가 금지돼 제 맛을 잃었고, 그 후에도 탁주업자들이 발효기간을 앞당겨 제조비를 줄이려고 카바이트를 이용해 만든 '카바이트 막걸리'는 숙취와 두통으로 악명 높았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평판은 나빴던 막걸리는 80년대 후반 질적인 개량을 통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탄산가스 억제기술로 장기보존이 가능하고 요즘엔 인삼·더덕 등을 첨가한 웰빙 주류로, 한류의 첨병으로 떠오른다. '막걸리 한류'에 기분 좋게 한 잔 올리고 싶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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