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정식] 가정이 왜 중요한가 기사의 사진

이즈음 가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아마 5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이 몰려 있어 모든 공공기관이나 언론 매체에서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두고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가정과 그 구성원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공기나 물 같은 자연환경을 푸대접했다가 건강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가정의 본질적 의미를 폄하함으로써 삶의 거점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 중심적으로 변하는 사회

오늘날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혼율도 높아져서 '가정의 위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혼자 지내도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생활이 편리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점점 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모되어 가정 그 자체를 소중한 가치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의 배경에는 하나의 뚜렷한 이념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인간관이다.

자유주의적 입장에 의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유기체이며, 따라서 사회나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 능률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개인은 욕구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획득한 재산이나 명예 혹은 권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기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며 건전한 공동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한편 이와 대비되는 것으로는 사회주의적 평등주의 인간관이 있다. 이 입장에 의하면 개인은 사회적 유기체를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기 때문에 사회나 국가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면 예전 공산 사회주의국가에서 보여주듯이 생산품의 분배는 물론 생산의 과정까지 철저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가 약해지고 의욕이 저하되어 결국 경제적으로 궁핍해질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활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인간은 생물학적 개체에 불과한 존재도 아니고 사회의 한 구성원에 그치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 즉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그러한 모습이 가정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가정 그 자체가 본능적인 동물로서의 특성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야말로 인간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본능적·사회적 존재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가정을 개성이 뚜렷한 개인들의 공동체로 이해할 것이고 사회주의적 입장에서는 그것을 사회 구성의 중간 단계적 집단으로 해석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가정을 생물학적으로 혹은 사회학적으로 일반화하여 어느 한 측면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접근하기에 가정은 너무나 공동체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지나치게 본능적 측면을 많이 안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부관계나 모녀와 부자의 관계, 그리고 자녀들의 관계를 어떻게 생물학적 본능이나 충동으로만 설명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이해관계처럼 규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정적 존재로서 그것을 파괴한다는 것은 인류의 존재 근거를 뿌리째 흔드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가정의 위기에 대한 성찰은 성숙한 사회를 구현하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현대문명을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문명 비판적 함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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