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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진홍] 국군 유해발굴


대구 북쪽 22㎞ 지점에 경북 칠곡군 다부동이 있다. 6·25 전쟁 최대 격전지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은 대구마저 내주면 안 된다는 각오 아래 8월12일 경북 상주와 칠곡을 잇는 이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밀고밀리는 혈전은 55일간 계속됐다. 당시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하던 백선엽 장군은 부하들에게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쏘고,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며 필사적으로 싸울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 결과 조국을 구했고, 북진의 계기가 마련됐다. 1만여명의 장병과 학도병, 경찰이 다부동전투에서 희생됐다.

6·25 전쟁 기간 국군 전사자는 13만7000여명, 실종자는 2만여명이다. 이 중 국립현충원 묘역에 잠들어 있는 전사자는 2만7900여명으로, 약 13만명이 산야 어딘가에 버려졌다는 얘기다. 조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그들의 시신을 아직 수습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사자들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사업은 6·25 발발 50주년인 2000년 육군본부에 6·25기념사업담당관실이 편성되면서 시작됐다. 첫 유해발굴 작업이 바로 다부동과 안강전투 지역에서 실시됐다. 2개월여의 작업 끝에 149구를 찾아냈다. 이를 포함해 군은 2008년까지 2855구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국군은 2229구이며, 나머지는 유엔군과 북한군 중공군 등이다. 요즘은 처음으로 미국의 합동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와 함께 강원도 화천 등지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2007년 1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MAKRI)이 창설됨으로써 발굴사업도 점차 활기를 띠는 양상이다. 연평균 70명의 한국전·베트남전 실종자 유해를 찾아낸다는 JPAC을 본떠 만든 MAKRI의 모토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다.

전쟁세대가 고령화되고, 국토개발로 지형이 변해 유해발굴에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사자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게 조국이 그들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JPAC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과 예산도 조속히 확충되면 좋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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