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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아빠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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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다. 가시고기는 강바닥에 산란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날부터 가시고기 수컷의 수난이 시작된다. 암컷이 산란해 놓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낸다. 때로는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한다. 가시고기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15일 동안 알을 지켜낸다. 마침내 알이 부화할 무렵, 수컷은 자신이 파놓은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는다.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자란다. 가시고기 수컷은 치어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내어놓는다. 그 부성애(父性愛)로 인해 가시고기 부화율은 90%에 이른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 중심에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이 투영된다. 늙수그레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역전의 용사가 아니다. 직장은 나이 든 아버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도심의 빌딩 아래에서 한숨처럼 담배연기를 토해내는 남자들,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놓고 삶의 한기를 느끼는 남자들,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아침마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들이키는 남자들…. 요즘 아버지들의 군색한 군상(群像)이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은 슈퍼맨처럼 힘있고 든든한 아버지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드라마나 영화는 아버지 없이 잘 사는 가정의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아버지는 항상 세속의 상징이다.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들은 설교할 때 술취한 남편의 모습을 희화화하기 일쑤다. 동공이 풀린 채 딸꾹질을 해대는 아버지를 흉내낼 때마다 여성들의 폭소가 터진다. 아버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로 추락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교회에 다니는 것이 홀가분하다. 교인의 60∼70%가 여성인 것은 그만큼 전도할 남성이 많다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주부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듣고 실소한 적이 있다. 어느 아파트에서 나이 든 주부들이 반상회를 열었단다. 경기도 좋지 않고, 주위에 어려운 사람도 많으니 바자를 열어 좋은 일 좀 해보자고 결의했단다. 집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하나씩 챙겨들고 저녁에 다시 모이기로 했단다. 그날 밤, 주부들은 모두 남편을 데리고 모임에 나타났단다. 농담이지만 무서운 이야기다.

가정의 기둥인 아버지의 권위가 무참히 흔들리고 있다. 가부장적 존재로서의 아버지는 이미 사라졌다. 짱짱한 아버지는 줄어들고, 기력이 쇠진한 아버지만 덩그마니 남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요, 사랑의 공급자요, 보호자다. 그분 없이 오늘의 내가 어찌 존재할 수 있는가. 구약시대의 아버지는 곧 제사장이었다.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자녀의 축복권을 가진 존재였다.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항상 대기 중이다.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는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후에 더욱 생각나는 존재다. 아버지의 사랑은 가시고기의 그것과 같다. 아버지는 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가정이라는 튼실한 둥지를 만들어 온갖 시련으로부터 지켜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땀과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철없는 치어 같은 자녀들에게 '안정'과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고 수컷 가시고기 처럼 스러져갈 것이다.

아버지의 날을 상징하는 꽃은 민들레다. 민들레는 짓밟힐수록 더욱 힘차게 일어난다. 아버지의 사랑이 민들레와 같다. 어머니가 앞장서서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시켜 드리자. 교회는 아버지의 존재를 바르게 가르치자. 아버지를 경홀히 여겨선 안 된다.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말자.

임한창 종교부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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