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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8000m급 거봉(Eight-thousander)은 모두 14개다. 히말라야산맥에 10개,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룸산맥에 4개가 있다. 산악계는 거봉들을 좌(座)라는 수사(數詞)로 센다. 1950년 안나푸르나에서 최초의 8000m급 등정이 이뤄진 이래 거봉 등반은 마치 기록경기처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14좌를 모두 올랐다. 이듬해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가 뒤를 이었다. 이후 한동안 완등자가 없다가 1995년부터는 거의 매년 완등자가 나타났다. 논란의 여지 없이 완등자로 인정된 사람은 모두 16명. 한국 산악인이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세 명이나 들어 있다. 엊그제 11번째 봉우리를 오른 오은선은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경쟁하고 있다.

메스너는 1970년부터 16년 만에 14좌 완등을 이뤄냈지만 2등 쿠쿠츠카는 이를 8년으로 단축했다. 두 기록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뒤에 오르는 사람은 크게 개선된 장비와 식량, 축적된 루트 정보 등의 덕을 본다.

메스너와 쿠쿠츠카는 또 오직 정상에 오르기가 목표인 등정주의 시대의 막을 내렸다. 지금은 어떤 루트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올랐느냐를 따지는 등로(登路)주의 시대다. 능선보다 벽, 우회보다 직선, 대규모 원정대보다 알파인 스타일, 단독과 무산소, 겨울철 등반을 높이 친다. 최근 박영석팀이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새 루트로 오른 것도 등로주의의 큰 수확이다.

고도 7500m에 이르면 산소 부족으로 인체는 한계를 느낀다. '죽음의 지대'라 불리는 이곳에서 메스너는 오히려 불안에서 해방되고, 고양감을 느끼며, 존재의 차원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에서 동생을 잃은 일에 대한 회한과 자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햐얀 고독'이라고 이름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절대 고독의 얼굴을 한 자신과 대면한다. 히말라야 고산이건 김해의 야산이건 그 속에서 마주치는 고독의 모습은 닮은 구석이 있을 터. 메스너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홀로 삶을 짊어지고 갈 때 오직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 또한 결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고.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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