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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노무현 기사의 사진

그는 영원한 비주류다. 그는 영원한 도전자다. 그는 영원한 실험가다. 개인적인 삶이 그랬고 정치적인 삶이 그랬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엔 항상 신·구질서의 충돌에 따른 파란이 일었다. 그는 살아서도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생을 마감하면서도 많은 숙제를 남겼다.

그는 가난하여 고등학교만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비주류이고 도전자였다. 안락한 판사나 변호사 생활을 거부하고 역시 비주류인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민주당의 황무지인 부산에서 떨어질 걸 번연히 알면서도 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과 시장에 출마한 "바보 노무현"이었다.

도전과 실험의 비주류 정치인

그는 영남 출신이면서도 호남의 절대적 지지로 권력의 정상에까지 올랐으나 비주류이긴 마찬가지였다. 어찌하다가 정권을 빼앗겼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인 보수 세력은 그를 이단아 취급했다. 그의 국정이 좌파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언행마저 국격(國格)을 떨어뜨린다고 폄하했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대통령 못해먹겠다" "이놈의 헌법" "막가자는 거냐" "깽판" 등 그의 거침없는 말투도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사사건건 야당과 부딪치고 보수 세력의 불만을 삼으로써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탄핵소추를 받았다. 급기야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열린우리당 그리고 많은 유권자들에서까지 비주류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하여 굽힐 그가 아니었다. 그는 취임 초, 대통령으로서는 격에 맞지 않게 평검사들과 '계급장 떼고' 얼굴을 붉혀가며 TV 공개 토론을 벌임으로써 스스로 기득권과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하려는 실험을 했다. 최도술 비서관의 비리로 여론이 악화되자 "국민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으로 맞섰다. 그는 또 진보적 성향의 386 정치인들을 축으로 정치개혁을 시도하다가, 한나라당에 모든 권한을 넘길 용의가 있다며 연정(聯政)을 제안하는가 하면,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 도전과 정치실험을 시도했다.

끝나지 않은 도전과 실험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 인터넷 정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정치실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가 참여정부의 존재 의미처럼 외치던 법과 원칙, 정경유착 근절 등은 최근의 박연차 사건으로 많이 퇴색하긴 했으나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도전이었다.

유일하게 낙향한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우리에게 더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더 크고 입증된 비리를 지니고 있는 전직 대통령들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가 그처럼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웠던 "도덕적 자부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담한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후의 대통령과 권력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값진 교훈을 남겼다.

그가 비주류라는 역경 속에서 시도했던 도전과 정치실험들은 국가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성공한 예도 있고 박연차 사건처럼 실패한 예도 있다. 그러나 그의 도전과 실험은 성패와 관계없이 어떤 측면에서든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의 도전과 실험에 대해서는 질문과 대답, 다시 말해 평가가 끝없이 이뤄질 것이다. 그의 도전과 실험은 계속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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