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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 행복 연금술] 공허감

[코엘료 행복 연금술] 공허감 기사의 사진

내 책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곳 원장은 공허감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 보이지 않는 독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그 어느 연구실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공포에 빠진 인체가 이런 공허감을 생성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삶을 달콤하지도 짜지도 않은 씁쓸함으로 표현한다.

누구나 조금씩 이런 공허감을 갖고 있다. 폐렴구균이 대다수 사람에게 존재하지만 면역능력이 떨어지면 걸리는 것처럼 삶의 공허감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심할 때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외부의 그 어떤 위험도 들어올 수 없는 세상을 구축하려고 자신의 내부에 과장된 면역벽을 세운다. 낯선 사람도, 장소도, 새로운 체험도 그곳을 침범할 수 없다. 이렇게 공허감은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피해를 준다.

공허감의 공격대상은 의욕이다. 이 질병이 생긴 사람들은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더 이상 자신만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하는 현실만 용납되며, 마음 속에 높은 담을 쌓으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허비했다.

외부의 모든 침입을 차단했기에 더 이상 성장 역시 불가능하다. 매일 출근을 하고, TV를 시청하고,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지만 모든 것이 자동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사는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통제된 느낌이다.

이런 공허감의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사랑도 증오도 의욕도 호기심도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도, 죽고 싶은 마음조차도 사라진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살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정신병자나 영웅이 멋있어 보인다. 정신병자나 영웅은 위험 앞에 당당하다. 그들은 모두가 꺼리는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정신병자는 자살을 하고, 영웅은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 결국 죽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다.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동경의 대상으로 떠오르며, 그 때가 바로 그들이 유일하게 내부의 벽을 넘어서 밖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하지만 얼마 후 팔다리가 지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공허감에 감염된 사람들은 대략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 오후에 자신의 증세를 자각한다. 분주한 것들이 잠시 멈추어진 그 순간 자신의 삶에 무언가가 잘못된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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