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석동칼럼

[한석동 칼럼] ‘無최루탄 10년’은 실패한 실험

[한석동 칼럼] ‘無최루탄 10년’은 실패한 실험 기사의 사진

며칠 전 한국경제연구원이 마련한 강연회에서 “경찰이 집회 관리만 잘해도 경제회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요지의 강연이 있었다. 임준태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촛불시위로 3조7500억원 가량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치안의 중요성을 특별히 지적했다.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면 법질서 확립과 함께 작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보탬이 되므로 일거양득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불법시위로 경제성장률이 매년 1% 이상 잠식됐다고 밝힌 적이 있다. KDI가 실시한 조사(2005년 기준)에서는 집회시위의 사회적 비용이 한 해 12조3200억원으로 추정됐다. 국내총생산(GDP)의 1.53%에 해당하는 수치다. 서울의 집회 한 번에 드는 사회적 손실을 단순 계산하면 평균 2억4000만원, 보행로·차로를 점거하는 경우 360억원, 광화문과 시청 옆 8차로를 점거하면 776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27일 미국 워싱턴 DC의 수단대사관 앞에서 여당 소속 미국 연방하원의원 5명이 시위를 하다 폴리스라인을 넘어 경찰이 그들을 등 뒤로 수갑 채워 체포한 일이 있었다. 의원들이 순순히 응한 것까지, 한마디로 부러웠다. 미국민들에게 시위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돼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다만, 공공기물을 훼손하는 등 금지된 행위를 하면 바로 체포되고, 위험수준을 넘은 행위로 경찰이 판단하면 발포가 뒤따르는 장면도 심심찮게 본다.

“이 지경까지 불법폭력시위가 일상화된 데는 경찰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불법시위에 엄격한 것은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다. 신고한 장소를 벗어나거나 폭력성을 띨 경우 무자비하리만치 가혹하게 진압해 ‘살아있는 공권력’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국내 일부 의원이 금지법안을 발의한 상황에서 거센 반대에 부닥친 복면시위도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복면 차림으로 시위에 참가하면 형사처벌되기 마련이고, 시위현장 주변에서 신원 확인에 지장을 줄 정도의 그런 물품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과태료를 문다.

법으로 보면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합법적·평화적 시위를 거의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다. 물론 불법에 관대하라는 조항도 없다. 그럼에도 불법폭력시위가 일상화된 데는 경찰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국가공권력의 권위 실추와 그로 인한 심각한 법치 훼손은 “불법 불용 엄단”을 줄곧 노래하면서도 스스로 만든 허풍쟁이 처지를 벗어나지 않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최근 ‘죽창시위’를 계기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제해 왔지만 최악의 상태에서는 부득이 최루탄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불법폭력시위와 그 때문에 시민들이 입은 피해보다 더 나쁜 상태란 혁명적 상황에서나 있을 일이다. 강경진압은 강경대응을 부른다는 비판에 계속 짓눌리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또 한명의 양치기 소년이 나오지 않기 바란다.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이 사라진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 때다. 무(無)최루탄의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으나 ‘무최루탄 선언’은 일종의 교만이었다. 10년 넘도록 시위양태가 개선되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실패한 실험이다. 권력이 무서워서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없어진 세상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사는 곳은 최루탄을 박물관에 보내도 좋을 만큼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필요하면 최루탄보다 더한 것도 쓸 때가 됐다.

편집인 jerome7@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