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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초월성을 보였지만, 마지막 비석 부분에서는 차마 미련을 접지 못했다.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그의 마지막 소원으로 남은 비석의 내용이 관심사다.

묘비명은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다. 동양에서는 주로 공적을 적어 읽는 재미가 없다. 이에 비해 서양은 위트에서 냉소까지 다양한 표현을 쓴다. '에피그램(碑詩)'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다. 묘비명은 스스로 미리 정해 놓을 수도, 후대가 바칠 수도, 망자의 글에서 뽑을 수도 있다.

묘비명 하면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가 첫손에 꼽힌다. 풍자의 달인으로 94세까지 장수한 노인답게 썼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나 맛깔스런 번역문과 달리 원문은 간단치 않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적었다. "술통 밑에 묻어줘. 운 좋으면 밑동이 샐지도 몰라"는 일본 선승 모리야 센얀의 것이다. 이건 누구의 문장일까. "식인종이 나를 잡으면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기 바란다. 슈바이처 박사를 먹었어. 끝까지 맛이 좋았고 그 끝도 나쁘지는 않았어."

한국의 명사 중에는 시인 조병화의 것이 가슴에 닿는다.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괴짜 중광은 "괜히 왔다 간다"고 했다.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등 전직 대통령의 묘비명은 국가와 민족에의 헌신이라는 딱딱한 내용뿐이다. 최근에는 자찬(自撰) 묘비명이 많아졌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석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덕수궁 분향소에는 동전함까지 등장했다. 돼지 저금통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듯 동전으로 비석을 세우자는 취지다. "우리들의 영원한 대통령" "불꽃처럼 살다가 이 산하에 묻히노라" 등이 올라와 있지만 더 좋은 글을 찾고 있다. 풍운의 정치에서 비극적 최후까지 어떤 글로 어떤 묘비명이 그의 삶을 응축할 수 있을지.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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