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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이승한] 노무현의 엔학고레

[삶의 향기―이승한] 노무현의 엔학고레 기사의 사진

황량한 유대 광야에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광야와 골짜기를 누볐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엄청난 힘 때문에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 성격은 급하고 호방하며 남성미가 넘쳤지만 육체의 힘에 비해 지혜는 그다지 많지 않아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해 민족을 괴롭히는 적들은 그의 손길을 피하기 어려웠다. 나귀의 새 턱뼈로 1000명을 한꺼번에 상대해 죽이는 특별한 능력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방 여인의 함정에 빠져 천부로부터 받은 힘을 다 빼앗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누구나 아는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삼손 이야기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나 사사로 20년(BC 1075∼1055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민족을 블레셋으로부터 지켰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판단 때문에 힘을 잃고 민족을 위기에 빠트렸다. 삼손의 이야기는 인간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무한하심, 그리고 긍휼하심과 끝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삼손은 1000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인 뒤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으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마르지 않는 샘을 얻었다. 선택받은 자였음에도 세속을 좇다가 멸망한 그의 드라마 같은 삶은 영화로도 많이 소개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감리교단의 중진 목사님을 만났는데 대뜸 "울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속한 교단이 두 목회자의 대표자리 다툼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결국 법정에서 대표 직무대행을 선임하게 돼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교단의 이미지 추락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 불황 여파로 헌금이 줄어드는데다 전도도 힘들어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 목사님은 교단의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회개하고 울부짖어야 엔학고레를 얻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엔학고레'라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신학공부하던 시절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엔학고레를 외쳤던 기억이 새롭다. 엔학고레는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이다.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얻은 마르지 않는 샘을 엔학고레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르짖는 사람이 많다. 정치 현장에서, 기업 현장에서, 노동 현장에서, 학교와 종교계에서도 부르짖는 소리가 많다. 들어줄 사람은 별로 없는데 외치는 사람이 많은 게 탈이다. 요구가 많으면 들어줄 위치에 있는 사람도 들어주지 못한다.

부르짖는 내용도 정당해야 한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이득을 위한 부르짖음은 공동체의 평화와 균형을 깨뜨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강한 부르짖음으로 다가온다. 그를 싫어했던 사람이나, 그를 추종했던 사람 모두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한 시대를 신념으로 살다 간 그에게 사람들은 환호한다. 그의 죽음은 권력무상을 가르쳐주고, 나태해져가는 양심을 깨워주며, 욕심과 편견을 내려놓게 한다. 그의 죽음은 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왜 천국에 가기 어려운지를 알게 해준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의도적으로 폄하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된다. 정쟁에 이용되거나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고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의 죽음이 이즘의 갈등으로 생긴 분열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는 엔학고레, 지역주의로 막혀 있는 담을 허물고 모두가 하나되는 평화와 화해의 엔학고레가 되어야 한다.

이승한 i미션라이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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