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뇌물.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목이다.

언론에 수차 보도됐듯 포괄적 뇌물은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어디에도 명문화돼 있지 않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역사적 단죄를 할 때 확립된 대법원 판례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포괄적 뇌물을 거의 맹신했다. 노 전 대통령 소환 후 며칠 뒤 검찰의 브리핑은 이랬다. "이렇게 (기사) 쓰면 섭섭하죠. …(돈 주는 사람이) 대통령이나 장관한테 뇌물 주면서 '이것 좀 봐 달라' 말 못한다. 포괄적뇌물은 (대통령) 직무 있고 직무 관련 행위 있으면 된다. (대가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본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이 '대가성 입증'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왔을 때 나온 답변이다.

헌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뇌물은 명확한 규정도, 입증도 필요없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국민장 기간 중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포괄적 감사권'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물며 개인의 형벌을 묻는 포괄적 뇌물의 판례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포괄적 뇌물이 살아있는 한, 후환이 두렵지 않을 대통령이나 장관이 어디 있을까. 돈 거래가 포착만 되면 일가족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뒤져 포괄적 뇌물로 엮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포괄적 뇌물에 빗대 '포괄적 살인'이란 말이 회자되는 것도 전직 대통령을 '잡범' 취급해 극단으로 내몰았다고 비쳐진 데서 나온 것일 게다.

이를 생중계하듯 보도한 언론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공식적인 언론창구인 대검 수사기획관이 정치권의 지적처럼 마구잡이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 수사 절차상의 진행 상황(압수수색, 피의자 소환 사실, 혐의 시인 여부 등 진술 태도, 영장청구)을 확인해 주는 수준이었고 언론이 이를 토대로 다양한 취재원을 동원해 모은 혐의 내용의 '단편'을 보도했다. 이런 식의 보도는 '검찰 관계자'란 이름 하에 흘러 나왔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 내 '빨대(취재원을 지칭하는 은어)'가 경마식 보도 경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빨대의 위력은 수사팀이 4월22일 노 전 대통령 측에 서면질의서를 전달하던 바로 그 순간 9시 저녁뉴스에 '1억원 짜리 시계 선물'이 보도되면서 절정을 이뤘다. 절묘한 타이밍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 빨대라는 의구심이 나오기까지 했다.

언론이 검찰의 '포괄적 뇌물' 적용은 참이고 '대가성 입증이 어렵다'는 반대 입장을 '립서비스(보도)'할 필요가 없다며 안이한 인식을 하지 않았는지도 성찰해볼 일이다. 유무죄의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수많은 주요 사건에서 검찰 수사가 무죄로 판명났다. 특히 수사단계의 피의자가 방어권과 반론권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검찰에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던 보도 관행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재임 시절 언론에 대못질한 노 전 대통령은 이번엔 언론에 대못질당한 형국이라고 생전에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유서에서 미안해하지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차제에 검찰과 언론은 수사단계에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보도의 범위 및 한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제2, 제3의 비극을 막는 길일 것이다.

정재호 사회부장 j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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