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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 행복 연금술] 지혜의 말

[코엘료 행복 연금술] 지혜의 말 기사의 사진

※카잔차키스의 신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관성있는 삶을 살았다.

훌륭한 성 프란시스코의 일대기를 비롯해 종교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다뤘지만 그 자신은 무신론자였다.

내가 알고 있는 신에 대한 정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카잔차키스의 것이다.

'우리는 우주를 지배하는 능력 중 가장 높은 곳을 경의로움을 갖고 바라본다. 나락, 비밀, 완전한 암흑, 완전한 빛, 영, 최종 희망, 최종 절망, 고요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를 알수 없지만 그 이름만이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과 소통하려면 그 어떠한 이성적 설명보다 위에 있는 이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벤아부야의 교훈

엘리사 벤아부야 랍비는 말한다.

'편견을 키우지 않고 삶의 교훈에 열려있는 사람들은 백지와 같다. 하나님께서 신령한 잉크로 그 백지 위에 쓰실 수 있다. 편견과 냉소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가득 채워진 종이와 같다.'

'자신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 과거나 미래에도 집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손이 당신의 삶에 오늘 서프라이즈를 쓰실 수 있도록 하라.'

※베고나의 속도

마드리드에서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관한 강연을 마치자 한 여인이 다가와서 내 강연에 빠진 주제가 하나 있다고 했다. 사실 빠진 것이 하나뿐이겠는가. 강연을 통해 내 경험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다. 한 카페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그 빠진 주제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자신을 베고나라고 소개한 그녀는 말했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해요. 저 역시 산티아고의 순례길 처음에 일행과 같은 속도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 육체의 한계 때문에 곧 문제가 생겼지요.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래서 하루 종일 그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얼마 후 저만의 리듬을 찾지 않으면 도저히 산티아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렸지만, 저 혼자서 제 한계를 따랐기 때문에 순례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제 삶의 모든 것에 이 원리를 적용합니다. 즉 자신의 한계를 알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www.paulocoelho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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